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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갑부훈 Sep 16. 2021

나는 예의가 없다

내가 제주도에 버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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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예의로 만들어진 곳 안의 풍경은 이랬다.

 

솔직함을 죽여 예의에게 먹였다. 그리고 포동포동 살찐 예의를 예의로 만들어진 곳에 바치면 그들은 내게 먹잇감을 주었다. 좀 더 안정적으로 먹잇감을 얻기 위해, 혹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고자 보다 넉넉한 예비를 확보하려 나는 가면을 썼다.


진짜의 내 마음들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가면은 들썩였지만, 이 안전함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나만 손해 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예의 없는 놈이 되려는 가면 속 내 시도를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예의로 만들어진 곳 안에서 맺는 관계의 풍경도 매양 비슷했다. 그가 내게 주는 사랑, 그 안정감을 잃지 않기 위해, 내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가면을 쓴 채 관계가 발전되었다. 그리고 가면을 벗을 타이밍을 놓치면 그 관계는 곧 위기에 봉착했다.


그러다 운이 좋게 매너로 만들어진 곳에서 왔다는 웃음이 자연스러운 이방인과 사랑을 시작했다. 그는 매우 솔직한 사람이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그의 조심성 없고, 거침없는 언행이 좋았지만, 그의 솔직함에 종종 상처 받아 울기도 했다. 하지만, 상처 난 부위를 모두 다 덮고도 남는 배려를 그는 무한히 베풀었다. 영원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무한한 사랑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매너로 만들어진 곳을 동경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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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의 없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맞다. 나는 예의가 없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사람을 만날 때 예의는 집에 두고 외출을 한다.


내가 예의를 가지고 나갈 때는 장례식장뿐이다. 때문에 예의 없다는 소리와 더불어 싸가지없다는 말도 종종 듣는 편이다. 하지만 싸가지없다는 말에는 <그렇지 내가 좀 싸가지가 없긴 해>하며 금방 수긍하는 한편, 예의가 없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다.


이 말은 네 부모는 너를 어찌 길러 이렇게 가정교육이 안되었냐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그의 편견과 나의 가치관의 충돌일 뿐인 곳에 애꿎은 내 부모들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다만, 나는 예의 있는 사람보다 매너 있는 사람이 되려 노력한다. 내가 생각하는 매너는 배려하는 마음인데, 이를테면 약속시간에 먼저 나와 기다리는 것은 매너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약속 시간에 늦거나, 약속을 까맣게 잊어 나타나지 않아도 그를 미워하지 않는 것도 매너다. 한국사람 대부분이 서로의 안부를 묻는 새해에 인사를 건네는 것도 매너이나, 동시에 우리 사이에 왜 새해 인사를 하지 않느냐 섭섭해하지 않는 것도 매너다.


무엇보다 매너는 유치하지 않다. 수저를 놓아주고, 반갑게 먼저 안부를 물어봐주고, 무거운 짐을 대신 들어주는 것은 매너이나, <내가 이것을 했으니 너는 마땅히 그것을 해줘야 하는 것 아냐>하는 식의 계산하는 매너를 경계해야 한다. 매너를 통해 내가 얻고자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그것은 계산이지 사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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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는 에티켓, 예의는 나와 너를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진 발명품이다.


자신의 성을 말할 때 스스로를 낮추어 ‘저는 염가입니다’라 말하지 않고 ‘저는 염 씨입니다’라고 한다며 핀잔을 듣고, 숟가락과 젓가락, 밥그릇과 국그릇의 좌우 위치를 거꾸로 놓았다고 비웃음 주고, 윗사람에게 먼저 악수를 제안했다고 꾸중을 들었다. 이런 나의 예의 없고, 예절 모르는 행동을 일일이 지적하면서까지 그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미풍양속이 아니라, <이런 에티켓도 모른다니>하는 그가 속한 세계로부터 나를 구분해냈을 때 느끼는 우월감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들은 윗사람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하는 것은 반항의 태도이고, 예의 없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예쁜 여자를 만나고 싶다면, 예쁜 여자와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해야만 한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돈 많은 사람과도 기죽지 않고 눈을 마주치고 협상해야만 한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싶다면, 어릴 때 나보다 싸움 잘했던 녀석과 두려움 없이 눈을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왕과 함께 걸어도 냉정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러니 우리 두 역사가 만날 때는 예의는 집에 두고 오자. 그리고 매너로 만들어진 곳에서 당신이 누구던, 또 내가 무엇이던, 우리 두 눈 마주치고 서로의 흥미로운 생각들을 즐겁게 나누자. 형 동생, 직장 동료, 동업자, 원수, 검찰총장, 개새씨, 소새끼, 등 다양한 이름으로 시작하는 모든 인연은 종래에 내게 가르침을 준 스승, 아니면 그리운 친구 이 두 가지 얼굴로만 우리의 역사에 기록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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