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유리 18화

살아난 유리 조각 #18

by Cruel Ella

영진은 서둘러 유리의 집을 향해 액셀을 밟는다. 같은 실수를 반복한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다. 유리를 차 안에 혼자 두지 말았어야 했다. 담당 형사에게 녹음파일을 전해주던 손길에는 영진의 간절함이 묻어나 있었고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법 테두리 안에서 정당한 처벌을 원했던 것은 오직 자신을 위해서였다. 유리의 어머니와 아저씨가 연루되어 있었지만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두려울 것 없이 없었다. 정당한 방법으로 떳떳한 자신을 만들어놔야 유리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영진의 아버지의 죽음이란 것이 영진을 움직였을지도 모른다. 혈육의 죽음은 당연히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다. 예상된 산재라고는 해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것만으로 미련과 원망이 생길 수밖에 없다.


돈. 그것이 그 어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포기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돈이다. 영진은 아버지를 그렇게 잃었다. 유리도 남편을 그렇게 잃은 것이다.


오늘 영진은 유리를 놓친 후회의 감정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오늘만큼 절실하고 처절한 순간을 살아본 적이 없다. 학생 시절에 아버지가 집에 없었던 밤에도, 보호자 없이 병원을 가야 했던 날도 영진은 외로웠던 것이지 간절히 누군가를 원하거나 그리워했던 것은 아니었다. 간편함과 실용적인 생활에 최적화된 성격이라고도 생각했다. 타인의 손길과 따뜻한 정서와는 거리가 먼 사람, 누군가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고 함께 공존한다는 것이 불편했다. 친구도 필요하지도 않았다. 다가오는 사람을 내치진 않았지만 나의 선을 유지하려 애를 썼다. 매너는 필요했지만 배려는 과한 행동이었다. 영진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유리를 만나기 전까지.


유리와 함께 올랐던 서울행 도로를 반대로 지나가면서도 그 풍경을 느낄 틈이 없다. 오로지 유리의 안전을 걱정하는 것뿐인데 심장은 이미 과다하게 뛰고 머리는 터질 것같이 되어버렸다. 사실 유리를 데려간 것은 그녀의 부모님이다. 유리에게 감옥 같던 바다 마을. 그곳은 이미 영진에게 특별한 곳이 되었다.


밤 11시 20분.


영진은 유리의 집 앞에 도착한다. 이미 깊은 밤, 밖에서 본 유리의 집은 얕은 조명과 함께 사람의 소리가 가벼운 파도소리와 겹쳐 들린다. 차 창문을 여니 차가운 밤공기와 스산한 바닷바람이 함께 들이닥친다. 소름이 돋는 공기 속에서 영진의 숨은 따뜻하다. 전력을 다해 달려왔건만 이 바다 마을은 눈치 없이 조용하다. 아무 일 없다는 듯 파도는 여전하고, 깊은 밤의 냄새는 과거를 회상하듯 머물러있다. 영진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천천히 차에서 내려 집 가까이 다가간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고 울타리도 없는 그 낯선 주택 주변을 조용히 걸어본다. 어느 창문이 유리의 방인지 모르겠다. 영진은 무얼 해야 할지 골똘히 생각 중이다. 유리는 핸드폰도 없어서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 집에 있을 거란 확신이 들지만 어떻게 불러내야 할지 모르겠다. 안전하지 않은 집이란 것이 확실해진 지금 유리는 꺼내와야 한다. 그것이 영진이 해야 할 일임을 알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아아아악!"


고요한 마을, 연이은 파도소리만 간신히 얹은 밤. 영진은 망설임 없이 보이는 창문에 몸을 날려 뛰어 들어간다. 이미 그곳은 지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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