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억하나요 #10

부푼 꿈

by Cruel Ella

그 후로 우리는 자주 연락을 했고, 시간이 될 때마다 만났다. 당연히 여자 친구와의 사이는 소원해졌고, 임신 사실은 거짓으로 들통나자 여자 친구는 잠적해버렸다. 그런 편이 나았다. 어떠한 변명도 듣고 싶지 않았다. 이별을 위한 계기가 필요했던 시점이었던 거다. 3년간 미적지근한 연애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그 끝에 지윤이가 있었다.


우리는 자연스레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난 대기업 취업 준비로 바빴을 시점에 지윤이는 작은 회사에 취직을 했다. 어떤 회사인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대기업 취직은 그야말로 정신없는 긴장의 연속이었고, 드디어 나는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럴 것이라 예상했다. 난 대학 졸업 성적도 나쁘지 않았고, 찜찜하게 있던 전 여자 친구도 정리가 됐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연인인 지윤이와 한창 사이가 좋을 때였다.


그렇게 제2의 인생이 시작됐다.


어릴 때 어머니가 하시던 가게에 불이나 순식간에 3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 3명 중 첫 번째로 발견된 시신이 우리 어머니였다. 아버지께서 결혼할 때 해주셨다던 목걸이로 시신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와 아버지는 단 둘이 남게 되었는데, 아버지께선 작은 회사에 취직하셨고, 난 대학에 붙자마자 자연스럽게 독립을 했다. 부자지간은 나쁘다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남자 둘이 진한 친분이나 부자간 애정 같은 건 없었다. 어머니의 빈자리만 덩그러니 우리 사이에 존재했을 뿐, 서로 안부를 묻지도 않고 생일도 챙기지 않았다.


대기업의 합격 소식은 나름 열심히 살았던 나의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회사 내에서 인정받고 자리를 잡으면 안정된 가정도 꾸릴 수 있고, 아버지에게 아들 노릇이라고 용돈 얼마씩이라도 보내드릴 계획이었다. 그런 창창한 시절이 있었다. 잘 될 것만 꿈 꾸며, 미래의 나를 상상하면서 지금의 자리에서 열심을 낼 수 있었다. 말끔하게 차려입으면 내가 서울의 인재라도 된 것 마냥 어깨에 힘이 들어갔고, 지윤이에게 남부럽지 않을 만큼 선물도 사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게 능력이라며 우쭐하던 그 시절이 가끔 그립다. 현실에 제대로 부딪혀 보지 못한 구김 없는 청년의 해맑은 모습은 단 2년 만에 무너졌다.






그녀가 돌아왔다. 작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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