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철엔 일년내내 먹을 김치를 담그는 게 누군가에겐 당연한 연례 행사였지만, 나 같은 사람에겐 번거로운 일이었다.
김장의 서막이란, 배추를 다듬어 소금에 절이고, 골고루 절여지도록 뒤집고,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면 소금을 헹궈내고, 짠맛을 조절해 고추 양념을 만들고, 김장김치에 들어갈 속을 썰어 넣고, 풀이 죽은 배추의 속을 굴을 친구 삼아, 파와 무를 동료 삼아 든든히 채워주며 주눅 들지 않도록 토닥거려 준 뒤, 공기에 닿지 않도록 예쁘게 포개 넣어야 끝이 나는 작업이지 않던가.
김장을 하는 날이면 이른 새벽부터 그날 밤까지 신경 쓰고 확인하고 몸을 움직이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온갖 고생을 한 날 저녁, 손으로 죽죽 찢은, 아직 익지 않은 배추김치가 마치 보상이라도 되는 듯 식탁에 오르면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하루 종일 고생했는데 그 어느 때보다 부실한 저녁식사라니. 나중에 알았다. 남들은 그날 수육을 만들어 함께 먹었다는 걸. 하지만 어머니께선 하얀 쌀밥 위에 빨간 김치를 올려주며 이제 막 담근 김치니 먹어보라며 권하는 게 다였다. 수육이 없는 건 상관없다. 어머니, 딸은 하얀 밥에 양념 묻는 거 싫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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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철이 다가오면 고생하실 게 불 보듯 뻔해서, 행여나 와서 손을 보태라는 말을 들을까 겁나서 올해부터는 절대 김장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다. 미적지근하게 돌아오는 답변의 온도를 무시하며 요즘 사 먹는 김치도 제법 맛있게, 종류도 다양하게 나오니까 무리하지 말라고 다시 한번 당부한 뒤 올해는 김치를 사먹어야지 했다. 그래도 공장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위안하면서.
불행인지 다행인지 올해는 김장김치를 영락없이 사 먹어야 하는 꼴이었다. 자매들과 함께 김장하기로 했던 어머니의 계획이 틀어진데다 시어머니께선 올해 암 치료를 받고 계신 시아버지의 병구완을 하고 계셨으니 한편으론 이 집이든 저 집이든 김장 노동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될 참이었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택배가 왔다. 정성껏 두른 테이프를 뜯고 뚜껑을 열어보니 언제 담갔는지 빨갛게 양념된 배추김치와 파김치가 한가득 들어있었다.
시간도 없으셨을텐데 이 많은 걸 언제 담그셨을까. 없는 냉장고 공간을 새로 창조해내는 신공을 발휘해 두 통 가득 김치를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고, 빨간 양념에 현혹되어 죽죽 찢은 김장김치를 내 입에 하나, 남편 입에 하나, 다시 내 입에 하나, 남편 입에 하나, 또 다시 내 입에 하나를 무한 반복했다.
(아니, 이렇게 달콤한 배추라니! 이렇게 맛있는 김장김치라니! 어머니, 올해 김장은 평소보다 더 맛있네요.)
눈시울이 김치양념처럼 붉어지려는 걸 애써 참으며 시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감사 인사를 건네는데, 옆에서 듣고 계시던 시아버지께서 뿌듯한 듯 말씀하셨다.
“올해 치료받느라고 밭을 돌보지도 못했다. 씨도 조금만 뿌리고, 물만 준 게 다거든. 그런데 평소보다 배추 농사가 잘 됐다. 고추도, 파도. 기력 없어 약을 못 뿌렸으니 오리지날 무농약이다.”
시아버지께선 때론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술술 풀리는 일이 있음을 알려주시고, 시어머니께선 힘들다고 마냥 피하고만 있을 수 없음을 알려주신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던 올해의 김장김치 배송 이벤트가 끝났다. 그분들의 잔소리도 아니요,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깨달음이지만.
그리고 또 하나의 깨달음. 잘 버무려진 김장김치를 하얀 밥 위로 올려 먹으며 드는 생각이란,
어쩌면 어머니나 시어머니나 ‘김장하기 힘드니 하지 마세요, 우리 이제 사먹어요’ 하는 말이 아니라 ‘제가 좀 도와드릴게요, 함께 해요’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물 주고 잡초 뽑기 힘드니 올해 농사는 접으라는 말이 아니라 주말에 내려가 물도 주고 약도 주고 할게요 하는 도움의 말이 필요하지는 않으셨을까.
다가오는 새로운 해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하나 지금 어렴풋이 알아버린 마음이 맛있게 익어갈 것 같다.
(이미지 제공: 픽사베이의 이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