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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경미 Apr 11. 2024

외딴섬처럼 살고 싶지는 않으니까


<디어 마이 프렌즈>라는 드라마를 부쩍 찾아봤다. 노년의 우정. 세월을 한바탕 질펀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끝즈음에는 무엇이 있을까. 언제나 그렇듯 머릿속으로 미지의 영역을 그려보고 그것도 모자라 그럴싸하게 만들어낸 이야기에 빠져든다. 훗날 찾아올 나의 노년을 그들의 삶에 투사하며 관람자인 듯 당사자인 듯한 위치에서 그들을 겪어낸다. 그 속엔 내 것은 아니길 바라는 이야기와 나도 그러길 바라는 이야기가 혼재되어 있다.     

또 한동안 <서울체크인>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빠져 있었다. 가수 이효리 씨가 서울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이야기. 그들이 나누는 수다와 생각들, 드러내 보이는 표정들. 나는 그것들을 그 자리에 동석한 사람인 듯 공감했다. 네모난 화면 속 그들의 영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응시하지도, 시청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시간을 겪어내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이고 싶어서, 사람이 그립고 그리워서. 또 온기와 향기가 그리워서.     




이런 내게도 사람을 이해할 수 없어 미워했던 때가 있었다. 실망하고 낙담해서 관계 맺기를 포기하고,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갖는 것조차 거부했던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하고 싶은 누군가가 불쑥불쑥 생겨나지만, 그때는 그게 더 잦고 짙었달까.      


나는 나무가 되었다. 가을철 가지를 잘라낸 나무처럼 되었다.

길을 걷다가 날카로운 소리에 고개를 들었을 때 전기톱을 들고 나뭇가지를 자르고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인도를 사이에 두고 도로와 평행으로 서 있던 건물의 창문을 훼손시킨다는 이유로, 창밖으로의 시선을 막는다는 이유로 나무는 가지를 잃었다.

나무는 몸통 가까이에 연결된 굵직한 가지가 몇 개 남긴 채로, 벗어진 머리처럼 성긴 잎사귀 몇 개를 달고 모습으로 한동안 서 있었다. 이듬해 봄과 여름, 굵은 가지를 뚫고 잎사귀가 자라났지만, 강전지 당한 나무는 오랫동안 흉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나무는 오랫동안 볼품없게 서 있었다. 오랫동안, 볼품없게, 나도 혼자였다. 강전지 당하지 않고, 스스로 관계를 강전지 하면서 그렇게 말이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내 곁에는 누군가가 있었다. 짧게 머물고 떠났던 사람들.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났고, 그들도 역시 나를 떠났다. 그중에 아주 적은 사람만이 아직 연이 닿아있고, 더러는 얇디얇은 실가닥에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 역시 언젠가는 떠날 것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만나고 떠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자연스럽다는 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다는 영역의 일이라는 뜻일 테니, 앞으로도 나는 만나고 떠나는 숱한 과정을 반복할 것이다. 


하지만 머리로 안다고 마음이 따라주는 것도 아니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진한 우정과 살아갈 날들을 함께 할 인연이 그리워진다. 찰나가 아니면 조금 더 길 뿐인 게 앞으로의 남은 관계의 속성이라면 내심 두렵고 서운한 건 어쩔 도리가 없다.


앞으로 내가 칠십이 되고 팔십이 되었을 때 그때의 내 곁에는 누가 있을까. 지나온 시간을 함께 나누며 울며 웃어줄 사람은 누가 있을까. 그 무렵에 알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아니면 요양원이나 병원이나 실버타운에서 만날 사람들? 그때쯤 만난 사람들이 내가 아프다는 소식에, 함께 떠나자는 이야기에, 누군가에게 큰일이 났다는 말에, 하늘이 무너진 듯 걱정해주고, 주저 없이 달려와 주고, 열불을 내며 화를 내줄 수 있을까. 시절 인연의 짧은 시간의 길이가 그보다 더 깊어야 할 마음의 깊이로 발전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여전히 오랫동안 내 휴대전화에 저장된 그 번호들이 반갑고, 때가 되면 연락을 주고받는 그들이 소중하고, 가끔 만나도 이야기꽃을 피우며 서로를 지지해주는 그런 존재가 사랑스럽다.    

 

어디 인연의 끈이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어지고, 유지되고, 튼튼해지던가. 인연은 마치 줄다리기를 하는 것처럼 양쪽으로 끈을 잡고 느슨해지지 않도록 돌봐주어야 유지되는 법이었다. 그런 존재들을 허투루 하지 않으며, 더 소중히 알뜰히 챙기며 강전지 해버린 가지를 옆으로 퍼트리고 잎사귀를 키워나가는 그런 중년이고 싶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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