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에 기쁜 마음으로 첫 발을 들인다. 이제 이곳은 평소 애정하던 카페가 아니라 직장이 될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내게는 직장보다 알바지만. 그 사실을 명확히 하자. 나는 머지않아 이곳을 떠난다. 끝을 정해두고 일을 시작하는 것만큼 유효한 기쁨이 없다. 아무리 좋은 취미도 일로 바뀌는 순간 그 재미가 떨어진다는 것을 수차례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스타벅스는 마음에 쏙 들었다. 여러 카페에서 일해봤지만 여기만큼 마음에 드는 공간은 없었다. 처음 면접을 보러 왔을 때도, 점장님이 좀 특이하다고 생각했지만 공간만큼은 익숙해서 좋았다. 면접을 보는 자리에서 고개만 돌리면, 카공을 하던 자리가 보였다. 일을 시작하면 스타벅스 파트너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선명한 초록색 앞치마를 두르면 새로운 마음을 가지게 될 거라는 교육도 마음에 들었다. 어쩐지 살짝 세뇌 같기는 했지만…
그러나 첫 출근을 하고 보니 그냥 아비규환이다. 하필 처음 출근했던 날에 코로나가 우리 매장 파트너들을 휩쓸었다. 보통 신입은 넉넉한 시간대에 배치되기 마련인데 나는 피크 타임 속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당시를 생각해 보면 나도 당황스러웠지만 우리 파트너들도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여기저기 쏘다니면서 일거리를 찾고 있었으니까. 정말 방해됐을 것 같다…
일할 때는 네 가지 역할이 있다. 주문을 받는 자, 음료를 만드는 자, 필요한 부분에 유동적으로 투입되는 자, 매장 관리와 온갖 잡무를 맡는 자. 이렇게 체계적인 시스템 속에서 굴러가는 나의 모습이 어색했다. 그냥 모든 것이 암기였다. 각 포지션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한 동작만 반복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예를 들어 설거지만 한다든지), 주문을 받을 때는 무엇을 체크해야 하는지. 무엇보다 심각했던 건 레시피다.
대체 얼마나 많은 메뉴가 있는지. 세어본 적은 없지만 50가지는 될 것이다. 처음 레시피 종이를 받아 들 때는 다른 나라 언어 같다고 생각했다. 재료와 순서, 숫자를 곱씹고 적어가며 외워야 했다. 처음 레시피 시험을 볼 때까지 스트레스로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동시에, 레시피를 빨리 외워서 바에 투입되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어서 내 몫을 해내고 싶었다. 남자친구랑 여행에 가서도 레시피를 외우다가 눈물을 흘렸다. 내가 선택한 일이지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으므로… 억울했다.
사실 암기에 들였던 시간만큼 결과가 따라오지는 않았다. 텍스트가 실제를 대비시켜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처음 교육을 받을 때는 조금 무서운 언니의 채찍질이 도움이 되었다. 마음은 급하지만 생각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았고, 그 언니는 ‘과연 그걸 먼저 하는 게 맞을까요?’라는 영혼도 표정도 없는 멘트를 던지곤 했다. 식은땀이 났다… 그 언니를 생각하면 집에서도 레시피를 한참 붙들 수밖에 없었다.
레시피가 몸에 익고 나면 오픈과 마감하는 법을 배운다. 카페에는 오픈, 미들, 마감이라는 세 파트가 있는데 나는 어느 카페에서든 주로 마감을 담당하던 사람이었다. 하루 내내 사용한 기물을 전부 닦고 정리하는 것. 바닥을 쓸고 닦고 비품들을 채워두는 것. 오픈은 그와 정확히 반대되는 일을 하는 거였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눈도 제대로 못 뜨고, 겨우 서서 오늘치 기물과 부재료들을 준비하는 것. 마감에서 준비를 잘해놓고 가야 오픈이 윤택해진다.
나는 오픈 매뉴얼을 종이로 받아, 마르고 닳도록 들고 다니며 외웠다. 앞치마에 넣어두었다가 물에 조금씩 젖어 잉크가 푸르게 번질 때까지... 오픈에 익숙해지자 잉크가 번지도록 마감을 외웠다. 나를 도와주는 파트너에 따라서 적응 속도와 암기 속도가 달라진다. 꿀팁들을 전수해 주는 파트너들이 있고, 정석대로 매뉴얼을 숙지하도록 도와주는 파트너도 있다. 각자의 방식대로 도움이 된다.
더는 일하러 가기 전에 외울 매뉴얼이나 레시피가 없다는 사실에 기뻐할 즈음, 새로운 프로모션이 시작된다. 프로모션이라 함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나 할로윈, 크리스마스, 새해처럼 특별한 시즌을 말한다. 새로운 메뉴가 올라오면 또 외운다. 대망의 프리퀀시 기간이 시작되면 서비스 기준을 다시 외운다. 그렇게 암기를 계속하고, 새로운 것들을 계속 배우다 보면 어느새 5개월이 흘러있다. 이제는 일하러 오기 전에 레시피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되는 시점이 왔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