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by 하이라이트릴

안락함 중독에서 나를 깨운 시간


코로나 이전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안락함’에 취해 있었다.

매달 이어지는 해외 비행,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시간 뒤에는 언제나 호텔 방이 기다렸다. 그곳은 세상과 단절된 섬 같았다. 나는 오롯이 혼자가 되었고, 무심히 흘러드는 알고리즘의 손길에 이끌려 무감각의 늪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곤 했다.

그러던 2020년, 전 세계가 멈췄다. 나 또한 멈추어 서야 했다. 그리고 그 멈춤은 내 귀에 잔잔하면서도 깊은 파문을 던졌다.

“너는 누구니?”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니?”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래서 책을 펼쳤다. 낯선 문장을 손끝으로 받아 적었고, 그 문장을 나누며 내 생각을 조금씩 길어 올렸다. 그러던 중, 내 안을 흔드는 한 권의 책이 내게 속삭였다.

“너의 영광은 언제였니?” “이제 네 이야기를 써봐.”


밑창이 떨어지던 날


도쿄행 비행을 앞두고 새 기내화를 받았다. 그러나 발에 맞지 않았다. 다음 날은 샌프란시스코, 장장 12시간의 비행이었다. 막막함에 떠오른 것은 8년 전, 헤이즐 선배가 웃으며 건네주던 신발이었다.

“나미야, 네 사이즈 맞지? 이거 가져.”

오랫동안 아껴두었던 그 신발을 꺼내 신었으나, 비행 도중 밑창이 덜컥 떨어져 나갔다. 너무 오래되어 삭아버린 탓이었다. 바닥에 흩날리는 검은 고무 조각을 바라보며, 함께했던 시간과 선배의 웃음이 떠올랐다. 기억 또한 밑창처럼 조각나 흩어져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다짐했다.

그 조각들을 다시 주워 모아, 광을 내야겠다.


2% 부족해도 괜찮다


나는 늘 두 번째 줄에 서 있었다. 학창 시절에도, 회사에서도, 밴드 안에서도 언제나 ‘세컨드 기타’였으나, 무대를 지키는 일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부족함은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붙잡아주는 균형의 추였다.

그래서 감히 말하고 싶다.

성적이 모자라도 괜찮다고.

삶의 무게에 흔들려도 포기하지 말라고.

그리고 가능하다면, 음악 같은 취미를 삶에 들여놓으라고.

그것이 우리를 다시 살아 있게 할테니.


독자에게 보내는 초대


이제 나는 흩어진 기억들을 다시 모아 책 속에 담으려 한다.

이 이야기는 나를 위한 기록이자, 당신을 향한 작은 초대장이다.


부족한 채로도 괜찮다.

당신 또한 스스로를 다시 받아들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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