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
지하철 두 번, 버스 두 번을 갈아타고 아침 7시 반까지 도착해야 하는 항공사 교육원.
전날의 피로와 시험 부담으로 잠을 잔 건지 눈만 감고 있었던 건지 모를 상태로, 몇 시간만 누워 있다가 나섰다.
교육원에 도착하면 먼저 복장 상태를 점검한다.
재킷과 스커트의 구김은 없는지, 손톱과 립스틱은 영롱한 빨간색으로 맞췄는지, 잔머리는 말끔히 붙였는지.
그리고 동기들이 모두 모이면 허리를 90도 가까이 숙이며, 큰 목소리로 인사한다.
“안녕하십니까.” “오하요 고자이마스.” “닌 하오.”
처음 배우는 안전, 서비스, 어학 지식은 생소하고 방대했다. 매일 평가가 있었고, 기준 점수 미달은 재시험. 재시험에서도 떨어지면 탈락. 재시험을 간신히 통과하는 날들이 반복됐다.
더 어려웠던 건 '나를 드러내지 않는 훈련'이었다. 개인 벌점, 단체 벌점이 예고 없이 떨어졌다. 손톱 모양, 립스틱 색상, 인사할 때 목소리 크기, 말투, 사투리, 떠든 것까지— 사유도 가지각색이었다. 벌점 14점이 넘으면 퇴출. 수료 직전 내 벌점은 10점이었다.
누군가 실수해 다 같이 벌점을 받는 날엔, 그 사람에게 원망이 쏟아졌다. 인간미와 동지애를 느끼기엔 너무 각박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지막 주에 한 명이 탈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눈물이 났다. 그 친구가 안쓰러워서였는지, 나에게 닥쳤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인지, 탈락시킨 상사들에 대한 분노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3개월의 훈련이 끝나던 날. 우리는 스스로를 자축하고 가르쳐준 상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은 수료식 행사를 준비했다. 개인 재능 조사가 있었고, 누군가 나를 추천했다.
“기타 칠 수 있잖아. 수료식 때 연주해줘.”
최종 면접 때 기타를 들고 왔던 나를 기억해준 동기였다. “그래, 알았어. ‘별이 빛나는 밤에’ 배경음악 쳐줄게.”
선택한 곡은 영화 《디어 헌터》의 OST, ‘카바티나’. 중고등학교 시절, ‘별이 빛나는 밤에’ 라디오에서 가장 먼저 흘러나오던 기타 선율.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이후 내 곁에 머문 또 하나의 곡이었다.
She was beautiful, beautiful to my eyes…
클래식 기타의 감성적인 선율이 퍼졌고, 동기들의 자작 헌사 낭독이 이어졌다. 분위기는 무르익었고,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던 찰나— ‘엥? 기억이 안 나. 다음 운지가 뭐였더라? 에라 모르겠다.’ 클라이맥스에서 잠시 멈췄다가, 얼굴이 벌개진 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같은 부분을 두 번 연주한 뒤에야 연주를 끝낼 수 있었다.
박수 소리가 멎고, 풍채 좋은 서비스 교육 담당 대리님—레온이라 불리던 그 분이 다가오셨다.
“나미 씨, 일렉기타도 한번 배워보지 않을래요?”
그 한마디가 또 다른 나의 음악 인생을 열 줄, 그때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