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 치마, 하얀 반팔 블라우스, 그리고 똑같은 올림머리를 한 여성들.
2002년 1월, 항공사 승무원 면접장 앞 대기실. 나는 공책을 들여다보며 예상 질문 답안만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 사람들 중에 내가 될 수 있을까?’ 걱정과 두려움뿐이었다.
원래 면접은 2001년 10월 예정이었지만, 미국 9·11 테러로 항공업계는 얼어붙었고 우리는 숨을 죽인 채 채용 재개만을 기다려야 했다. 그 사이 준비생 카페에는 후기와 정보가 넘쳐났다.
면접관의 표정, 질문 유형, 합격자 추정까지. 너무 많은 글 속에서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졌고, 결국 나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성실(?)했던 나의 대학 시절, 그 결실. 바로 클래식 기타. ‘이 아이를 데리고 가야겠다.’
1998년, 대학교 2학년 때 나는 클래식 기타 동아리의 문을 두드렸다.
어릴 적 형편 때문에 중단해야 했던 피아노 학원이 늘 아쉬웠는데, 기타 역시 피아노만큼 다양한 멜로디와 화성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가르쳐줄 선배도, 운영진도 없는 그야말로 유령 동아리였다. 곧 입대를 앞둔 회장은 동아리를 통째로 내게 맡겼고,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순식간에 회장이 되어버렸다.
다행히 80학번 시조격인 선배가 학교 행정실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 선배에게 주 2회 레슨을 받았다.
선배의 두꺼운 손가락에서 스페인제 기타는 깊게 울렸다.
“카르카시 교본이 기본이야. 손에 계란이 담겼다고 생각하고 줄과 친해져야 해.”
점점 실력이 붙어가던 중, 하나의 곡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나는 이 곡을 나의 연인처럼 대했고, 동아리방에 홀로 앉아 악보 한 칸 한칸 손으로 더듬어가며, 매일 5~6시간 연습에 몰두했다.
등하굣길 지하철 안에서도 손가락으로 트레몰로를 연습했고, 밥 먹을 때도, TV를 볼 때도 손가락은 쉬지 않았다.
드디어 선배 앞에서 ‘알함브라’를 연주한 날.
“이야, 너 정말 많이 늘었구나. 구슬이 굴러가는 것처럼 잘 치네. 말타는 소리도 안 나고.”
선배의 말에 어깨가 으쓱해졌고, 그날 나는 비로소 회장다운 회장이 된 것 같았다.
그 후에는 후배들을 직접 가르치고, 정기연주회도 열고, 동아리를 다시 살아나게 만들었다.
덕분에 졸업 후에도 그 동아리는 계속 이어졌다.
최종 면접 대기실.
“1004번 들어오세요.”
나는 클래식 기타를 들고 일어섰다.
면접관들이 관심을 보인다면 ‘알함브라’를 들려드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입장 직전, “그건 기타인가요? 두고 들어오세요.” 아쉽지만 괜찮았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기타는 나에게 충분한 용기를 주었으니까. 나는 기타를 내려놓고, 밝은 표정으로 들어섰다.
“허나미 씨는 비행기에서 기타 치실 건가요?”
“네, 매직팀에 들어가서 손님들께 즐거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기타를 본 면접관님이 던진 질문에 나는 준비된 웃음과 대답으로 답했다. 며칠 후, 도착한 이메일.
‘허나미 씨의 합격을 축하합니다.’
그렇게, 나에게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