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그녀, 조용한 나

by 하이라이트릴

“선배님, 제가 태어났을 때 지나가던 스님이 그러셨대요. ‘아기가 장군감이네요. 국제적인 인재가 될 겁니다.’라구요. 제가 딸이라 장군은 못 됐지만, 국제적인 인재는 맞긴 하네요. 하하.”

“전 어렸을 때부터 말발이 있어서요 학창 시절 내내 전교 회장을 도맡았어요. 기도 세서, 어디서도 눌려본 적 없어요.”

그래서일까. 디바는 늘 무대 앞에서 당당했다. “디바야, 너 연습보다 실전에 더 강하구나! 가창력도 많이 늘었고, 무대 매너도 완벽했어. 훌륭해.” 윙어스의 전설 보컬 아델 선배의 극찬을 들은 그날 이후, 디바의 눈빛은 한층 더 빛나기 시작했다.


“얘들아, 이번 공연에 ‘Get Lucky’ 신나는 락 버전 어때? 축제 분위기에 딱일 것 같은데.” “선배님, 요즘 누가 락을 들어요. 그렇게 오래된 노래, 20~30대는 아무도 몰라요.” ‘야, 꼭 아는 노래만 해야 하는 법 있어? 그리고 10년도 안 된 노래잖아. 모르긴 뭘 몰라. 설사 몰라도 신나기만 하면 되는 거지. 그리고 꼭 보컬만 곡을 골라야 해?’ 속으로 웅얼거리며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데, 잭 선배가 내 편을 들어줬다. “야, 나미가 하자고 하는 거 무조건 해.”


모처럼 쉬는 날 난지도에 모여서 고기를 구웠다. 해가 저물 무렵, 우리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돌아가며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말솜씨는 부족하지만 나도 한마디 끼고 싶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옛날에 747팩스기 벙커 2층 오른쪽 침대에서 승무원 한 명이 쉬고 있었대. 그런데 갑자기 빨간 블라우스를 입은 승무원이 커튼을 확 열더래. ‘아, 여기 쉬고 있어요!’. 레스트 끝나고 나와서 ‘누가 커튼 열어서 잠 깼다’고 투덜거렸더니, 옆에 있던 선배가 말했대. ‘야, 우리 중에 빨간 블라우스 입은 사람 아무도 없어.’ …그 빨간 블라우스는… 귀신이었던 거야.”

“…빨간 블라우스는 귀신이었대… 하.하.하.하.” 극적인 긴장감도 없이 평이하게 이야기를 끝낸 나는, 디바의 박장대소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엘에이 비행이었다. 윙어스 멤버 몇 명과 우연히 같은 스케줄이었다. 매니저의 디브리핑이 끝나고, 디바와 스카이 주변에 후배들이 모여들었다. “선배님, 우리 이따 고기 먹으러 갈까요?” “그래. 옷만 갈아입고 간단히 짐 정리하고, 30분 후에 만나자.”

그 비행에서 가장 시니어는 나였다. 그런데 아무도 내 주변에 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방으로 돌아와 조용히 짐을 풀었다. 잠시 후, 스카이에게 카톡이 왔다. “선배님, 고기 드시러 같이 가실거죠?” “아냐. 너네끼리 다녀와. 디바랑 샤인, 노에… 얘네 나 불편한가 봐. 편하게 먹고 와.” “선배님, 그런 건 아닐 거예요.” “아니야. 나도 좀 피곤해서 쉬고 싶어.”


사실, 디바와 그 밑의 후배들과 나는 접점이 거의 없었다. 내가 육아 휴직을 하던 시기에 윙어스에 들어왔고, 멤버 수가 많아지면서 비행도 보컬 그룹과 세션 그룹으로 나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 그룹이 달라서 친해지지 못했다는 건, 어쩌면 핑계에 불과하다. 나는 디바에게 필요한 선배였을까?

어깨 펴고 당당하게, 후배들의 귀감이 되는 존재였을까? 조용히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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