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우리 자작곡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게요. 윙어스 주제가만 있다면 우리도 실력파 밴드로 인정받을 텐데 말이에요."
하지만 현실은 자작곡은커녕 편곡조차 버거운 우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제온 선배님이 떠난 뒤, 대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한 에밀리가 신입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작곡뿐 아니라 편곡에도 능했고, 키보드 연주는 전공자 못지않았으며, 교회에서 배운 드럼 실력까지 겸비한 만능 뮤지션이었다.
"에밀리야, ‘흰고래’에서 조 바뀔 때 코드가 너무 헷갈리는데, 키보드로 하나하나 쳐줄래?" "네, 선배님. 이렇게 치시면 돼요."
"에밀리야, Shallow 밴드 버전으로 편곡 가능할까?" "네, 선배님. 기타 두 대, 드럼, 베이스, 키보드 세 대로 구성하면 될까요?"
이렇듯 오더만 하면 척척 해결하는, 그야말로 윙어스의 새로운 능력자였다.
그런데 에밀리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바로 ‘천사병’이었다. 만나는 선배들마다 그녀에겐 ‘예쁘고, 착하고, 천사 같은’ 존재였다. "나미 선배님은 예쁘시고, 착하시고, 천사세요." "엘리 선배님도 예쁘시고, 착하시고, 천사십니다."
합주가 끝나면 엄지를 척 들어올리며 칭찬이 쏟아졌다. "나미 선배님, 파워 베이스 너무 멋지셨어요. 완벽한 연주에 반했습니다." "잭 선배님, 기타 사운드에서 영혼이 느껴졌습니다. 최고십니다."
에밀리에게 거절은 없었다. 초승달 같은 눈, 어린아이 같은 귀여운 목소리로 뭐든 "네, 선배님"이었다.
그 무렵, 또다시 자작곡 이야기가 나왔다.
"아, 우리도 괜찮은 주제가 한 곡 있었으면 좋겠다." "선배님, 제가 얼마 전에 작곡한 곡이 하나 있는데요." "정말? 그럼 우리 윙어스 주제가로 기부하는 거야?" "네, 선배님. 윙어스 주제가로 드리겠습니다." 천사병답게, 힘들게 만든 곡을 망설임 없이 바치는 에밀리였다.
"이번 공연에 자작곡 한번 해볼까?" "네, 선배님. 세션 분들께 악보와 가이드 음원 보내드리겠습니다." 심지어 떠먹여주기까지, 완벽한 ‘천사’였다.
어느 날, 에밀리에게 개인 카톡이 왔다. "선배님, 제 자작곡 베이스를 쳐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응, 알았어."라고 답했지만 사실 그 곡은 마음에 크게 와닿지 않았다. 익숙한 코드 진행에다 과한 꾸밈음이 살짝 거슬렸기 때문이다. 결국 베이스 초보인 써니에게 넘겼다. "써니야, 자작곡 준비해봐."
한 달 뒤, 연습실에서 각자 준비한 자작곡을 맞춰보는 날. 첫 소리는 불협화음이었다. '아직 멀었네.' 하지만 에밀리는 드럼도 치고 키보드도 치며 멤버들을 이끌었다. 그때만큼은 천사병이 사라진 듯 단호했다. "써니 선배님, 코드가 계속 틀리시는 것 같아요. 이 부분 다시 확인해주세요."
연습을 거듭할수록 소리는 놀랍게 진화했다. 특히 애리얼과 스카이가 함께 부르는 하모니는 너무나도 잘 어울렸고, 그 옆에서 잭 선배의 깔끔한 기타 사운드는 곡을 더욱 빛냈다.
에밀리에게 처음 받았던 악보와 가이드 음원과는 완전히 다른 곡이었다. 그제야 후회가 밀려왔다. "에밀리가 부탁할 때 내가 맡아볼 걸…"
그리고 마침내, 회사 정원에서 열린 사내 공연. 우리의 첫 자작곡이 세상에 공개됐다. 동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와, 노래 진짜 좋다. 드라마 주제곡 같아." "에밀리 씨, 이 곡 음원 등록해보세요." "윙어스 멤버들은 에밀리 씨 마음 바뀌기 전에 저작권부터 등록해놔야겠네."
농담 섞인 말들 속에서 에밀리는 싱글벙글 웃었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아쉬웠다. ‘베이스 소리만큼은 부족해. 음도 불명확하고 코드도 아슬아슬하게 틀려. 내가 했더라면 곡이 완벽했을 텐데….’
연말 공연 준비 중, 나는 결국 써니에게 말을 꺼냈다.
"써니야, ‘눈을 감아도’ 이번엔 내가 쳐줄까?" "선배님, 저는 이 노래가 너무 좋아요. 제가 했던 곡 중 가장 마음에 들어서 꼭 제가 하고 싶어요." "어… 그래."
어쩌겠는가. 윙어스 최초의 자작곡. 그 역사적인 무대에서 함께할 영광을 내가 스스로 걷어찼으니.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음악에서 가장 큰 배움은 무대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비워낸 자리에 흘러드는 울림을 지켜보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