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다시 기타를 배운다
딸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한 후, 학교에서 재미있는 공지가 떴다. ‘신연중 학부모 기타반 모집. 6개월간 기타 단체 레슨비 지원’
‘우와, 요즘 중학교는 정말 좋네. 지난번에는 학부모 독서교실 모집해서 책도 6권이나 주더니, 이번엔 기타 레슨비까지 지원해주네? 스케줄 되는 날만 나가면 되니까 한번 지원해 볼까?’
4월에 신청하고는 소식이 없었다. ‘아, 선발 안됐나보다.’
그러고는 잊고 지냈는데, 지난주에 카카오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기타반입니다. 7월부터 레슨 시작할 예정이에요. 회원 간 스케줄 조율 부탁드립니다.”
‘오, 나 선발된 거야?’ “저는 회사에서 스케줄 근무를 해서 가능한 날에 맞춰 나가겠습니다. 다른 분들께서 정해주시면 따를게요.”
회원 간 스케줄이 엇갈려, 격주로 금요일과 일요일 중 가능한 요일에 나가기로 했다. 마침 이번 주 일요일은 쉬는 날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받는 기타 레슨이라 두근두근 설렜다.
아침 일찍 남편의 기타 가게에 들러, 소리 좋은 통기타 하나를 챙겼다. 10시 50분, 2층 계단을 따라 학원으로 올라갔다. 간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GIRL 음악 교습소 – 통기타, 일렉기타, 드럼, 피아노 교육’ ‘GIRL? 선생님이 여성분이신가?’
문이 닫혀 있으면 밖에서 기다릴 생각이었지만,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똑똑.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아직 11시가 안 됐으니 잠깐 쉬고 계세요.” 흰머리가 멋스럽게 센, 단정한 남성 선생님이 반갑게 맞아 주셨다.
기타 가방에서 기타를 꺼내 조율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묻는다. “기타 쳐보신 적 있으세요?” “네, 클래식 기타랑 일렉기타 조금 쳤어요. 잘 치진 못하지만 밴드 활동도 하고 있어요. 지금은 베이스도 맡고 있고요.” “오, 그러시군요. 베이스는 어느 정도 치시나요?” “들으면 그냥 칠 수 있어요. 슬랩도 기본은 가능합니다.” 선생님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스쳤다. 그때, 갑자기 1번 줄이 툭 끊어졌다. ‘아, 기타 줄 여분이 있던가?’ 아쉽게도 없었다. “선생님, 혹시 여분 줄 있으실까요?” “찾아볼게요. 대부분 1번 줄이 먼저 나가서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 다행히 있네요. 줄 갈 줄 아세요?” “네, 클래식이랑 일렉기타 많이 갈아봤어요.”
조심스럽게 줄감개를 돌리며, 기타 줄을 갈았다. 줄을 다 교체한 뒤, 옆에 앉은 학부모와 인사를 나눴다. “기타 쳐보신 적 있으세요?” “네, 대학교 때부터 조금씩 쳤어요.” “와, 저는 완전 초보예요. 부러워요.”
그때 또 한 명의 회원이 들어왔다. “어머, 안녕하세요?” 학부모 독서모임에서 뵌 분이었다.
“기타반을 재작년부터 하고 있어요. 신연중 축제 때 통기타 합주도 했고, 작년엔 노래까지 했어요.” “네?! 우리 축제에 공연도 나가요?” “모르셨어요? 기타반 모집 공지에 써 있었을 거예요. 공연 참가 조건으로 레슨비를 지원받는 거예요.”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자, 다들 오셨으니 기타 한 번 쳐볼까요? 기타 쳐보신 분, 초보이신 분 손들어 주세요. 초보 분들은 이쪽으로 오시고요. 3년 차 회원님은 아르페지오 연습하세요.”
“나미님은 기타 좀 쳐보셨다고 하셨죠? 악보도 보실 줄 아시고요? 그럼 Falling Slowly 한번 쳐보세요.” 영화 Once의 주제곡. 감미로운 발라드였다. 악보를 보며 조심스럽게 연주했다.
“오~ 잘 치시네요. 노래는 어떤 장르 좋아하세요? 악보집 중에 쳐보고 싶은 곡 골라보세요.”
“저는 80~90년대 올드 팝 좋아해요.” “그럼 조금 더 난이도 있는 곡으로 바꿔 볼게요. Stairway to Heaven, 이 곡 쳐보세요.” 몇 번 천천히 따라 치자, 손에 익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초보 회원들을 가르치다가 어느새 내 옆에 오셨다. “수준 차이가 많이 나네요. 진도는 따로 나가야겠어요. 나미님, 하고 싶은 곡 있으세요?” “네, 사실 Top Gun Anthem을 제작년에 공연했었는데요. 중간 속주 부분이 계속 무너져서, 이번엔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요.”
“아, 그 어려운 곡요? 무대에서 하기엔 좀 난이도가 높긴 해요. 이렇게 하죠. 함께 연주할 곡을 골라서, 다른 분들이 스트로크 반주하고, 3년 차 회원님은 아르페지오, 나미님은 일렉기타 솔로. 저는 드럼이나 베이스 맡아서 연주하면 무대가 꽤 다채로울 거예요.”
“네! 저야 일렉기타 칠 수 있다면 너무 좋죠. 그런데… 선생님 혹시, 예전에 유명한 밴드 멤버 아니셨어요?” 선생님은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예… 그렇긴 하죠.”
‘GIRL’이라는 밴드, 갑자기 학창시절 TV에서 본 기억이 났다. 집에 돌아와 유튜브를 검색해 보았다. ‘GIRL – 아스피린’ 1996년, 가요 TOP 10에서 1위를 했던 레전드 밴드. 국내 최초로 공중파에서 1위를 차지한 밴드로 기록되어 있었다.
영상을 재생했다. ‘이 노래, 나 알아!’ 핫핑크, 보라, 연녹색, 연핑크의 번쩍이는 자켓을 입고 상반신을 흔들며 연주하는 비주얼 밴드. X자 다리를 접고 연주하는 핫핑크 기타리스트.
바로, 그분이 내 선생님이었다. 90년대 락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무대 매너. 나는 여러 번 반복해서 영상을 봤다.
“우와, 너무 멋있어요!!” 기타반 카톡방에 링크를 올렸다. “헉, 30년 전 걸…ㅋㅋ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내가 16년 만에 만난 세 번째 기타 선생님이다. 다음 레슨 시간엔 꼭 이렇게 말씀드릴 거다.
“선생님, 저… ‘아스피린’ 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