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건, 나의 버킷리스트, 나의 놀이터

by 하이라이트릴

영화 탑건의 주제곡은 기타리스트 스티브 스티븐스의 화려한 기타 연주가 인상적인 곡이다.

결혼 전, 남편과 데이트하던 어느 라이브바에서 이 곡의 연주를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강렬한 전투기 엔진 소리, 영롱한 종소리, 하늘을 찢는 듯한 공중전의 날카로운 굉음이 기타 한 대에서 흘러나왔다. 빠르고 현란한 손놀림으로 모든 소리를 만들어내는 기타리스트를 나는 그저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 마음 깊은 곳에 꿈이 하나 생겼다. 언젠가, 저 곡을 내 손으로 직접 치고 싶다.


시간이 날 때마다 그 라이브바를 찾아가 연주를 녹화했고, 결국 그 기타리스트를 찾아가 “가르쳐달라”고 졸랐다. 그는 나를 위해 느린 버전으로 연주해주었지만, 나는 첫 음조차 제대로 낼 수 없었다. 그 곡은 내게 ‘닿을 수 없는 꿈’이었다.


‘올해는 꼭 연습해서 이 곡을 쳐보자.’ 그 다짐을 15년을 했다. 그러다 코로나가 시작되었고, 3년간 기타를 아예 내려놓았다. 회사 사정은 어려워졌고, 아이들을 집에서 전담하며 지내다 보니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기타는 눈길조차 가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사이, 우리 밴드도 활동을 멈추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보컬·기타·키보드·퍼커션만으로 소규모 공연을 계획하며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스몰밴드로 준비하던 계획은 어느 순간 불붙은 멤버들의 열정에 의해 풀밴드로 변경되었다.

답사를 다녀온 공연장은 관객과 가까워 영감을 주고받기에 더없이 좋은 무대였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그 곡이 떠올랐다. 탑건.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연습해둘걸…’ 절실한 마음에 남편에게 말했다.

“딱 한 달 남았는데, 지금부터 하면 가능할까?” 남편은 웃으며 말했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그래도 해봐요.”


잭 선배님께 문자를 보냈다. “선배님, 이번 공연 제 성장의 전환점으로 삼고 싶은데, 탑건 연주해도 될까요?” 그의 물음표가 느껴졌다. “가능하겠어?”


생각해보았다. 2015년 호텔 캘리포니아 기타 솔로를 연습할 때도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한 달 반 동안 욕심내어 연습했고, 결국 해냈다.

딸아이가 콩쿨을 준비하며 매일 한 시간씩 연습해 결국 무대를 완성해낸 기억도 떠올랐다.

‘그래, 매일 두 시간씩 하면 못할 이유가 없다.’

“선배님, 저만 열심히 하면 될 것 같아요.”


연습 계획을 세웠다. 집에서 연습 가능한 날짜를 달력에 동그라미 치고, 하루 한 마디씩 집중 연습하기로 했다.

스마트폰은 비행모드. 방해는 없다.


가장 어려운 부분을 가장 작은 단위로 쪼개어, 반마디씩 0.5배속으로 연습했다. ‘포모도로 기법’을 활용해 25분간 집중, 5분간 휴식.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전까지만 몰입하고, 다시 이어가는 2시간 루틴을 반복했다.


첫날, 둘째 날, 셋째 날… 매일 한 마디만 연습했다. 5일이 지나자 조금씩 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부분이 손에 붙자, 앞뒤 마디를 연결해 나갔다.


킬링 파트를 넘자 연습이 빠르게 진전됐다. 일주일 하고 하루 만에, 어설프지만 0.7배속으로 완주할 수 있게 되었다.


전체 연주에 도전했다. 턱턱 걸리는 부분이 생겼다. 그 부분을 다시 잘게 쪼개 연습했다. 영상을 찍고 피드백하며, 또다시 연습했다.


이제는 ‘연습이 재밌는 단계’에 도달했다. 처음엔 마른 장작 같던 내 기타 소리가 이제는 떡처럼 말랑하게, 줄과 손끝이 하나처럼 붙었다. 포모도로 알람도 필요 없었다.


속도를 원곡에 맞추려 하자 정확도가 뭉그러졌다. 다시, 한 번은 느리게, 다음 한 번은 빠르게. 이 두 가지를 번갈아 연습하며 정확도와 속도를 함께 끌어올렸다.


연습에 필요한 연차도, 하늘이 도운 듯 승인됐다. 신이 났다. 반주 음원에 맞춰 연주했다.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기타를 치는 느낌이었다.

숨이 막히는 듯한 몰입, 빠르게 흐르는 시간, 지금 이 순간이 지난 20년 밴드 활동의 클라이맥스였다.


합주실에 갔다. 하지만 선배에게 말했던 “저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기타만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드럼, 키보드, 베이스, 모두 각자의 스케줄 근무를 조율해 단 두 번의 합주 시간을 만들었지만 그 두 번조차도 완성도 높은 합주로 만들 수 없었다.


절망감이 스쳤다. 하지만 이 곡은 내 부탁으로 시작된 곡이었다. 아이 돌보랴, 업무하랴 시간을 쪼개 연습해온 멤버들이었다.


“탑건 멤버들아, 우리 조금만 더 연습하자.” 집에 가려던 멤버들을 붙잡고 부탁했다. 박자와 코드, 곡 진행 순서를 다시 짚었다. 베이스는 내가 직접 시범을 보이며 가르쳤다.


드디어, 공연 당일. 오프닝 곡이다.


마지막까지도 ‘이번 곡은 무대에서 빼야 하나’ 고민했다. 완벽히 연습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호텔 캘리포니아 때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연습했고, 몰입했고, 준비했다.


무대가 어두워지고, 조명이 나를 비추었다. 무대 위엔 나 혼자뿐이었다. 내 안의 힘에 집중했다. 편안하게 내려놓았다. 틀리면 어때, 흐름만 잃지 말자.

그 순간까지도 어려워하던 멤버들의 연주가 하나로 조화를 이루었다.


박수와 환호. 모든 것이 찰나처럼 지나갔다.


“이얏호!” 잭 선배님이 두 손을 들며 외쳤다.

“엄마 최고!” 딸아이는 깡총깡총 뛰며 소리쳤다.


후배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모았다. “선배님, 오늘 공연 완전 찢었어요.”


남편은 내 연주 영상을 각종 SNS에 올렸다. ‘듣기엔 편안하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까다로운 곡’ ‘최고로 열심히 준비한 연주’ ‘소울이 느껴진다’ 이런 수식어가 댓글로 달렸다.


가장 뿌듯했던 건, 이 곡을 처음 봤던 그 라이브바의 기타리스트, 나의 스승이 댓글을 남긴 것이다. Great job.


탑건 공연은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라고 해두자. 비록 완벽한 연주는 아니었지만, 짧은 시간 최고의 몰입으로 내 영혼을 불어넣었기에 후회는 없다.


탑건은 나의 놀이터다.

매일 놀고, 매일 힘을 얻고, 다음 도전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곳.


그래서 나는 지금, 더 큰 즐거움 속에서 다음 무대를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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