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 1I - 너도 처음이야? 나돈데 (1)

친해지자 우리

by 풀잎


적응기간 : 아이들이 안정적으로 일과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기간.


신학기가 시작되면 아이들에게는 ‘적응기간’이라는 2주의 시간이 있습니다.

물론 기존 재원하였던 아이들은 1주 안에 모든 적응이 마무리되는 것이 대부분이지요(아이마다 다르지만요)


첫 사회에 발을 디딘 사람들에게 적응기간이란

보통의 일과를 보내며 스스로 해 내야 하는 업무일 뿐입니다.


함께 하는 선생님들에게 적응하는 것도 제 업무 중 일부이지요.


주임선생님과 같은 반을 운영하게 된 저는

기존 담임교사의 업무 이외에도


메이트 교사 성격 파악하기 업무

메이트 교사 교실 운영 방향 맞춰가기 업무

메이트 교사 업무 성향 파악하기 업무

메이트 교사에게 신뢰감 얻기 업무

등등..


많은 업무들을 쳐내며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버텨내었다는 동사로 이야기하는 것이 더 올바른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도 버티던 중인 하루였습니다.


“얘들아 선생님이 책 읽어줄게 “


간식을 다 먹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안전하게 공백 시간을 가지는 것 또한 저의 업무였기에

아이들이 모여 앉아있는 ‘언어 영역’으로 가 책 한 권을 들고 앉았습니다.


“아기 곰은 밤이 무서웠어요.. 무서운 소리가 들렸거든요! 어흥! 사자의 울음소리 같기도 했어요”


아이들은 제각각 눈을 가리기도 하고 작은 손으로 입을 막기도 했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저는 마치 배우가 된 양

느껴지는 모든 얼굴 근육과 성대를 사용하여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그래 내가 동화구연대회 금상 수상자다’


그 작은 아이들이 즐겁게 듣는 모습을 보니

속으로라도 괜히 으스대고 싶었어요.

참 못났다.

그렇지만 제가 듣기에도 재미있고 실감 났던 걸요.


라고 생각하려던 찰나였습니다.

첫 페이지가 넘어가고 고작.. 3페이지 중간을 연기해 나갈 때 즈음.

한 아이가 책을 보다 말고

친구를 밀고, 몸을 비틀었습니다.


오징어,, 같달까요

아니 오징어보다는 귀여우니,,

귀여운,, 연체동물 그 어딘가였습니다.


재미있었을텐테..

이상하다..

머릿속에 온갖 의문을 갖은 채 아이를 쳐다보았습니다.


“불편해*~ 밀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어~”

“불편하다니까 밀지 마!”


* 불편하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 불편하다 ' 는 ' 짜증 나, 싫어, 하지 마 ' 와 같은 강도 높은(?) 부정적인 언어를 순화시킨 마법의 단어로, 아이들에게 최대의 부정적인 감정 표현입니다. 0세부터 그렇게 알려주었거든요


와 같은 야유가 반 전체를 채웠습니다.

아이의 행동은 더 심해졌고

주변에 앉은 아이들이 다칠 것만 같았습니다.


어떻게 하지.. 이러다가 다칠 텐데..

라고 생각만 하며

눈빛으로 선생님에게 SOS를 보냈습니다.

눈으로 던진 섬광은 불발이었습니다.

혹은,, 거부,,?

였던 것 같습니다.


분명 거부였습니다.

저와 눈이 마주쳤거든요.

‘어떻게 하나 보자,, ’와 같은 눈빛이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 이것도 사회생활이다. 내 업무였지!


저는 유능한 교사임을 동료 선생님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저는 바로 아이를 앞에 데려와 앉히고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와,, 오은영 박사님처럼(전혀 비슷하지 않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거 불편한 거야, 안 되는 거야. 보라는 이제 책 읽기 어려워요”


라고 무능하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아이는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았습니다.

몸을 비틀고, 공룡도 사자도 아닌 소리를 내며 제 이야기를 소리 안에 가두었으니까요.


괘씸했습니다.

부끄럽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 말을 안 들어?”라는 생각과 “이렇게 아이한테 지는 건 신뢰를 얻기 어려운데”

의 생각들이 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아이의 어깨를 강도 높게 잡아 제 얼굴을 보게 했습니다.

아이는 제 얼굴을 아니 정확히는 코를 보았고,,

아이의 단단하지만 여린 정수리는 저의 코에 정확히 내다 꽂혔습니다.


그 모습을 본 선생님은 그제야


“누가 선생님을 때려요”

라고 호통치셨습니다.


눈물이 흘렀습니다.

아파서 흐르는 눈물은 아니었지만 속이고 싶었습니다.

이미 흘린 눈물이라 이유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 눈물은 분명 아파서 흐르는 눈물은 아니었습니다.


누가 볼세라 빠르게 눈물을 닦고

그 자리를 떠 다른 아이들에게로 갔습니다.


그 하루 내내

“출근 일주일 만에 박치기를 당한 교사”

라는 생각이 저를 울컥하게 했습니다.


1년 차 교사는 생존기라 했던가요

누군가 마이크에 대고

"풀잎은 생존하지 못하셨습니다"

라는 말을 온 동네방네 소문낼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주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생존하기 위해

아린 코를 부여잡고 억지로 눈물을 참았습니다.

그토록 아팠는데 참으니까 참아지더군요.


힘없이 걸어온 교사실에서는

밀린 업무를 하며 애꿎은 키보드만 세게 두드렸습니다.


키보드가 안쓰러우셨는지

선생님 한 분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풀잎쌤 요즘은 어때? 할만해?"


이 한마디에 저는 봇물 터지듯 속상함을 토해냈습니다.


"하지 말라고 이야기했을 뿐인데 박치기하더라고요.. 코피 나는 줄 알았어요.. 어떻게 해야 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할까요?"


가만히 듣고 계시던 선생님께서는 이내 입을 여셨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와서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하지 말라고 하면 선생님도 하기 싫잖아. 일단 친해져 봐"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맞았습니다.

사람과도, 아이와도 단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아이와 친해지기도 전에 교사 노릇을 하려고 한 제가 괘씸했습니다.


그렇게 저의 첫 번째 프로젝트

보라와 친해지기


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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