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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글 길(2)

글은 백지에서 시작한다.

by 오이랑

정말 운이 좋게도 합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떨어질 것이라 자신했건만, 예상 밖의 결과였다. 친구도 덩달아 합격하게 된 덕에 앞으로의 미래가 두렵다기보다는 기대되기 시작했다.

면접 날 대기하다가 만난 친구들은 인스타그램에 자신들의 결과를 올렸는데, 대부분 합격이었다.

… 음.

이 기분을 뭐라고 할까. 정말 좋긴 좋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유치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 질투심과 의심.

모두가 합격하는 시험이라면 그 가치가 높진 않을 것이다. 분명 저들은 나보다 글을 잘 쓰겠지만, 그리하여 실력이 떨어지는 내가 합격했던 건 운이 좋았던 것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어느 정도의 선별을 거치고 결과를 통보한 것이 확실한가?

나는 내가 떨어지더라도 공정하고 올바른 과정을 선호한다.

이 결과를 받아들이긴 하겠지만은 한 편으로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아무에게도 티 내지 않았던 비밀 한 가지를 말해보자면, 난 이 합격에 의심을 품었다는 사실일까.


학교 선생님께서 우리 둘이 합격했다는 말을 들으시고는 환하게 웃으셨다. 잘 됐다며 응원한다는 말을 남기신 그분은 정말 그 말이 끝이라는 듯 평소와 똑같이 행동하셨다.

그분은 내가 봐 온 선생님들 중 가장 ‘선생님’ 같은 분이셨다.

다정하고 예쁘시던, 정말 좋은 분. 그분의 속을 알기는 어렵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며 깨달은 것은 아이들을 정말 아낀다는 것이었다. 내 인생을 바꾼 것이 확실한 은인은 후련하게 웃었고 나는 그 시절을 후회했다.



Q. 인간이 언제 후회를 한다고 생각하세요?

A1. 과거를 돌이켜봤을 때, 그 순간이 지금보다 더 행복했던 것 같아서요.

A2. 으음. 부끄러운 기억이 생각날 때? 아니, 진짜 흑역사는 매일 밤 생각나서 미치겠어요….

A3. 잘못했으니 후회를 하겠지 뭐.



내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선생님과 내 관계를 ‘사람의 인연’으로 보지 않고 정말 ‘사제 관계’로만 본 것이다. 선생님께 좀 더 관심을 가졌다면 좋았을 것을…. 그분은 나와 친구에게 어떠한 말도 없이 훌쩍 떠나버리셨다.

이제 그분을 다시 뵙기란 어려울 것이다.

중학교를 졸업해도 다시 만나자며 약속까지 했으면서.

아, 그래. 어쩌면 이 여정이 끝난다면 언젠가는 다시 그분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다시 현재에 이르러, 나는 친구와 함께 교육원으로 향했다.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는데 시험을 합격한 다른 이들의 첫인상은 ‘평범한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건방지고, 속된 말로 싹수없는 생각이었지만… 솔직히 이곳으로 향할 때 나름 기대를 품고 있었단 말이다.

소심해서 잘 나서지 않는 아이들이 대부분이고 일부의 활기찬 아이들만 나서서 관심을 받는 공간. 이곳이 정녕 영재를 위한 집단이 맞나? 우리는 스스로를 드러내는 법부터 가르침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첫날의 오리엔테이션은 생각보다 아쉬웠다. 그리 큰 흥미를 주지도 않았을뿐더러 글에 대해 배우는 것도 없었다.

그러나 ‘내 반’을 배정받고 처음 그 인원을 본 순간 심장이 덜컹거렸다. 문을 열자 하얗고 긴 책상이 보이고 그 양쪽에 7개, 중앙에 1개의 의자가 위치해 있었다. 건너편의 커다란 창문, 그 너머로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이 보였다. 은은히 들어오는 바람 냄새가 귀를 스쳐 지나갔다.

여기가 우리의 교실이구나.



Q. 감상평

A1. 솔직히 부담스러웠습니다. 앞으로의 일에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사실은 정말. 감당하기 힘드니까요.

A2. 정말 긴장됐었죠! 엄청 떨리는데 설렘인지 무엇인지 구분도 가지 않았거든요.

A3. 별 감흥은 없었는데.



처음 든 생각은 이거였다.

조용하고 하얗다.

그래, 정말 하얗다.

나는 그곳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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