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에서 인연 맺기
중학교 3학년, 시험이 끝나고 이제 놀기에만 매진하던 어느 날 국어 선생님께서는 내게 제안을 건넸다.
‘여기, 문예창작 영재 교육원이라고 시험 합격하면 글을 배울 수 있는데. 한 번 지원해 볼래?’
본래 공부 이외의 분야에 큰 흥미를 두지 않아 그런 기관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처음 그 제안을 듣고 며칠을 고민했었다. 무언가를 도전해 보는 것이 내겐 어렵게 다가왔고 그것을 혼자 해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극과 동기가 없으면 포기를 일삼는 사람.
나의 도전에는 항상 자극 어린 결심이 필요했다.
하지만 저 시험에 합격한다면, 그래서 수업을 들을 수 있다면 나는 새로운 경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애초부터 글을 좋아하고 어릴 적부터 즐겨왔으니 저 ‘글쟁이’들이 모인 곳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래.
낯선 사람을 만나기는 정말 무섭고 두렵지만 그럼에도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선생님을 만나러 가던 날, 친한 친구로부터 연락이 한 통 왔다. 서로 자주 연락하는 편은 아니었기에 웬일인가 싶어 확인해 보았고 그 순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너도 ‘그거’ 제안받았다며?]
그 친구 또한 선생님께 똑같은 말을 들은 것이었다. 당황했지만 워낙 글쓰기에 탁월한 친구이다 보니 바로 납득이 가능했다. 함께 지원하기로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을 때 나는 잠시 여운에 잠겨있었다.
좋아. 혼자가 아니라면 괜찮아.
한 명이 떨어진다면 꽤 슬프겠지만, 어쨌거나 지원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원서를 넣고 그 장소로 가서 실제로 시험을 치르는 날.
어쩌다 보니 프로필 사진을 준비하지 못해서 초등학교 졸업 사진을 보여드렸는데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하셨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가셨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도 내 얼굴이 그때와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 괜히 기분이 묘했다.
시험은 ‘글’에 대해 물어왔고 나는 준비 하나 없이 글을 적었고 면접을 치렀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는데, 면접에서 꽤 좋은 성적을 얻은 것 같다. 추후 이곳을 다니며 겪게 된 일을 풀며 면접을 어떻게 진행했는지도 언급하겠다.
시험이 끝난 후 나는 넋이 나가버렸다. 지상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면접 때 착용한 명찰을 땔 생각도 못할 만큼 머리가 멍해졌었다.
친구와 오늘 있었던 시험에 대해 얘기를 하다가 문뜩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가 져가고 있었다.
별로 한 것도 없었는데 하루는 너무 빠르게 흘러갔고 나는 너무 쉽게 지쳤었다.
통화가 끊기면, 도시의 소음을 내 귀에 온전히 담았다.
기왕이면 합격하면 좋겠다.
진짜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왕 하는 거 합격하고 싶다.
스스로의 이기적인 면모가 우스웠지만 어쩔 수 없는 진심이었다.
그리고 혹시 모르지 않아? 이 기회로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는 건데.
당시의 나는 스치듯 그런 생각을 했고
그것이 현실이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