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병은 낫지 않기에.
나는 아직 나를 잘 모르겠다. 나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객관적인 정보밖에 없었다. 가령 3남매의 막둥이라든가, 성별이 여자라든가. 서류로 나타낼 수 있는 객관적인 판단들만이 나를 이루는 요소였다. 그것을 제외하자면야, 솔직히 말할 것도 없다. 몇 시간 전까지 끔찍이도 사랑했던 것에 흥미가 팍 식을 때가 많아 무엇을 좋아하는 지도 헷갈렸고 무언가를 증오했던 적도 없어 무엇을 싫어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참 재미없는 인생이다.
Q. 스스로를 정의 내릴 수 없는 자는 바보인가요?
A1. 당연한 일인데, 그걸 평가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A2. 아니요! 그럴 수도 있죠.
A3. 그렇게 따지면 온 세상 사람들이 바보겠어.
나는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가까운 지인에 대해서는 잘 알았다. 무의식 중에서 남을 분석한 데이터가 쌓여 상대 스스로보다 내가 더 그를 잘 알았다. 사소한 습관부터 그리 좋지는 않은 면모와 생각 외로 다정한 부분까지 수집했다.
그렇게 알게 된 인간들은, 솔직히 말하자면 전부 징그러웠다. 비열한 행동을 삼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 싫었다. 어두운 이면을 감추고 남을 대하는 모습을 편하게 보기 어려웠다. 어쩌면 혐오에 가까울 마음으로 상대를 대우하다가도 가끔, 정말 가끔씩 이런 인간이 아름다웠다.
웃을 때면 저절로 입꼬리가 따라 올라갔다. 눈이 마주치면 웃음이 새어 나오곤 했다. 그 사람이 기쁨에 몸 둘 바를 몰라 웃을 때가 가장 보기 좋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에는 그 사람을 마주칠 때마다 토가 나오려 했다.
Q. 증오인가요?
A1. 애증이 아닐까요.
A2. 으아. 정말, 음. 모르겠어요.
A3. 복잡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여태 난 애증이라 정의 내릴 정도의 절절한 감정을 품은 적이 없었다. 애초에 타인을 쉽게 증오한 적이 없다. 사람에게 무신경한 것이 습관이 되었던 어린아이는 그 습관을 따라 무심한 성정으로 자랐기에 어쩔 수 없던 것이다.
열이 오르는 커트라인도 높았고 때문에 심경의 변화가 큰 편이 아니었다. 남들이 보면 무례하다고 평가할 사람이 무어라 해도 솔직히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그러나 주위에서는 이런 내가 너무 착하다며 화를 내보라는 말이 많았고, 그럴 때마다 난 그들의 말에 오류 따윈 없다는 듯 머쓱하게 웃으며 알겠다는 싱거운 대답을 건넸다. 물론 대답만 하고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러다가도 아주 가끔, 내게 대놓고 무례를 저지르는 인간들에게는 신경이 쓰일 때도 있었으나 인과응보에 따라 스스로 제 죄의 대가를 받을 것이라 생각하고 적당히 선을 쳤다.
정말 재미없는 인생이지 않은가?
무언가에 대한 열정도, 하다못해 스스로의 신념을 지키기 위한 싸움도 없는 인생.
고작 미성숙한 학생이 무엇을 하려나 싶으면서도 이 성정이 어른이 되면 달라질까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이대로 멈춰있을 것만 같았다.
그때는 그랬었다.
Q. 사랑인가요?
A1. 그럴 겁니다. 어떤 마음은 사랑에 증오가 깃들기도 하니까요.
A2. 음. 그쪽에 가깝지 않을까요.
A3. 몰라. 걔를 자기한테 투영한 거 아니야?
살아가며 진정 사랑이라 느꼈던 대상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 사랑이라면 비참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그래. 당연하다.
내게 사랑이라 느낄 정도로 열정을 주었던 것은 살아있는 생물도 아니라 그저 종이에 불과한 소설 속 인물이었으니까.
다행히 나는 그 인물에게 이성적인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 다만 그 인물을 내가 낳은 아이처럼 대우했다.
변덕이 심했던 내게도 이 종이 속 인물은 몇 년 동안이나 함께 있어주었다. 이 녀석을 볼 때면 이상하게 눈물이 나왔고 그가 걸어온 수많은 여정을 다시 읽을 때면 어김없이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인물에 동화되어 그를 대신해 울었다. 남을 위해, 비록 살아있지 않더라도 타인을 대신해서 우는 일은 처음이었다. 하루종일 오열하다가도 그의 선택을 존중했다.
길을 따라 걸으며 그의 신념을 존경하게 되어버린 순간, 기어이 이 소설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 일부 때문에 내게도 열정이란 게 생겨버렸다.
글을 읽는 순간만큼은 내 인생도 재미없지 않았다. 받을 사람 없는 감정이 비참하지도 않았다. 이 인물을 보며 징그럽다고 생각하지도, 혐오하지도 않았다. 반면 살아있는 인간을 보면 웃음이 나오면서도 토할 것 같았다. 이런 것은 분명 사랑이 아니었다. 그러니 온전히 마음을 준 것은 오직 이 소설의 인물 하나뿐인 것이다.
그러다 주인공의 이야기가 엔딩을 맞이한 그 볕 좋은 날. 소설 속 인물들이 각자의 길을 걷기 위해 이별하고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들과 재회한, 완벽한 해피엔딩을 맞이한 순간에서야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맹목적으로 마음을 주었던— 귀한 시간을 바쳤던 이유를.
이 인물은 내가 꿈에 그리던 ‘좋은 인간’이라는 목표이기에 그랬다는 것을.
Q. 동경하나요?
A1. 숭경 합니다.
A2. 인물을 그리워하기보다는, 저 인물처럼 될 수 있었을 어릴 적을 그리워해요.
A3. 동경이라도 할 줄 알면 좋지. 지금은 꿈꿀 수밖에 없으니까.
살아있는 사람에게 애정을 갖기에 사람은 너무 쉽게 변했다. 사실은 마음이 변할 내가 두려웠다. 상대를 징그러워하고 애틋해하는 이기적이고 모순적인 내가 어떻게 남을 애정할 수 있을까.
부모님조차 제대로 사랑할 수 없는 이상한 사람임에도 나는 아직까지 ‘남을 사랑할 줄 아는 좋은 사람’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 목표에만 닿는다면 이 인생에도 재미가 깃들 것 같았다. 그렇게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를 알고 자신만의 신념을 드러낼 줄 아는 멋진 사람을 꿈꿨다. 그래. 소설 속 인물처럼, 온전히 남을 사랑할 줄 아는 멋진 사람처럼.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이 많은 곳을 가면 토기가 올라왔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멀쩡히 보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남을 해코지하거나 무례하게 굴지 않았다. 오히려 대화를 할 때면 반대로 긍정적인 마음이 치솟았다. 그리고 헤어질 때면 어김없이 속이 울렁거렸다.
이유 없이 인간을 애증 하는 것이 병이라면 내게 드는 약은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타인과의 교류를 꺼리지 않는 이들에게 진심 어린 찬사를 보낸다. 그런 이들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줄 좋은 사람이니 칭찬받을 자격이 있다. 소설 속 등장인물에게는 박수를 쳐주고 싶다. 당신은 어떻게 남을 이유 없이 사랑할 수 있는지. 나는 아마 당신처럼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다만 어디엔가 나처럼 재미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불치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솔직해 내가 보기엔 이 병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 번 징그럽게 느껴진 것은 끝날 때까지 징그럽다. 그런데 가끔,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어떤 마음에 밀리는 순간이 온다. 토기가 쏠리는데도 눈을 못 뗄 것만 같은 순간이 온다. 스스로의 모순이 어이가 없는데 도저히 애정을 접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 인생에 재미란 것이 피어난다.
울렁거리는 마음으로 붙인 애정이 자라난다.
이 글은 철부지 학생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약을 찾고 있을 당신에게 드리는 선물.
사실 우리는 미워하는 만큼 사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