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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1): 외톨이의 예의

울타리 너머를 궁금해한 적 없었기에

by 오이랑 Feb 22. 2025


 학교가 친구들과의 놀이터로만 느껴지던 시절. 타인을 받아들이는 시기에 나는 사람을 배우지 않았다.

 나무를 보기보다 숲을 감상하는 것이 취미였던 나에게 개인을 들여다보는 것은 귀찮은 일로만 다가왔다. 그들의 일부를 하나하나 발견하기에는 그 정도의 열정이 없었고 여유가 없었다. 나는 함부로 상대에 대해 묻지 않았고, 그렇기에 관계에는 진전이 없었다. 그들 또한 발전하지 않는 관계는 득이 될 것이 없다는 걸 알았는지 만나는 상대들은 어느 순간 연락이 끊기곤 했다.

 근데 돌이켜보면

 나는 단 한 번도 그들에게 먼저 연락한 적 없었다.



 Q. 서로에 대한 애정이 있는 일방적인 관계는 어떨 것 같나요?

 A1. 그런 관계도 있나요?

 A2. 엄.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은데요.

 A3. 알아서 잘하지 않을까 싶은데. 헤어질 거면 헤어지겠지.



 안타깝지만 나는 나를 스쳐간 이들에게 애정을 품고 있긴 했다. 다만 그들과 가까워지고 싶지는 않았다. 누군가를 나의 울타리로 들이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었고 그만큼의 대가는 지나치게 컸기에. 때문에 울타리까지 들어오는 여정에 있어 온갖 방해물들을 둬야만 했다.

 못 들은 척 하기, 함께 가지 않기, 단답 하기.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 사회 부적응자 다운 행동들이다. 상대를 좋아하면서 왜 상처 줄 행동들만 골라했는지. 그렇게 떠나는 상대를 보며 나는 ‘어차피 그럴 줄 알았어.’ 속삭이고는 등을 돌렸다. 쿨한 척 뒤돌았을 때 남은 것은 ‘사람 안 좋아하는 아이’라는 낙인뿐이었다.

 무슨 소리야. 나도 사람 좋아할 줄 알아.

 혼자서 반박했지만 닿을 곳은 없었다.



 Q. 혼자서 살아남기, 어떨 것 같나요?

A1. 이런 사회에서는 그러기 쉽지 않죠. 하지만 못할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잖아요.

A2. 외로울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 시선도 신경 쓰이고…. 거기다 아는 사람들이랑 있으면 좋기도 하고요.

A3. 좋은데.



 사람을 애정하지만 다가갈 용기가 없는 겁쟁이에게도 신은 기꺼이 해답을 내려주신다. 나는 ‘홀로 서는 법’이라는, 책으로 만들었다면 몇 십 권이나 나올 대장정의 첫 시작을 때었다. 그 여정에는 남들의 길에 방해물을 던져놓았던 것보다 더 많은 고난들이 여정을 자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과정을 하나씩 배워가며 이 여정의 끝에는 달디 단 보상이 존재하리라는 어리석은 기대를 했다.

 ‘홀로 서기’. 얼마나 외롭고 용기 있는 단어란 말인가.

 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줄여갔다. 연락도 잘하지 않게 되었다. 대화하는 방법을 체득하지 못했고 남을 기피했다. 얼른 이 만남이 끝나길 바라는 마음을 감출 줄 몰라 표현해 버리기 일쑤였다.

 당연하게도 이런 내 표현에 사람들은 조용히 떠났다.

 나를 떠나는 이들의 등을 바라보는 게 익숙해지던 날. 모든 게 일상으로 자리 잡은 순간에 생각했다.

 뭐야, 이거.

 홀로 서기가 아니라 모두가 떠나는 외톨이 이론서잖아.



 Q. 알게 되었으니, 변화할 건가요?

A1.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저 긴 여정을 거친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A2. 네!

A3. 할 수는 있는지부터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이미 머리가 커버린 지금, 내가 무엇을 바꿀 수 있는가. 진즉 자리 잡은 ‘외톨이 습관’을 고치기란 쉽지 않았다. 심지어 타인을 알아가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가끔 알고리즘에 뜨는 대화 영상을 찾아보는 것이 전부였다.

 타인이 내 울타리를 넘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방어벽을 세웠다. 그들이 입구로 오기까지의 모든 여정에 가시밭길을 만들어 두고는, 내게서 돌아갈 때에는 홀로 작별 인사를 건넸다. 항상 들을 사람이 지쳐 떠나고 나서야 말을 건넬 용기가 생겼다.

 이 정도면 낯가림이 심한 게 아니라 병이 있는 건 아닐까.

 스스로를 갉아먹는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수 없는 인생에 한탄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내 지인이라고는 해봤자 말만 쉽게 뱉을 뿐이지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는 않았다. 학교가 아닌 곳에서 만나기를 거부했고 서로의 사적인 내용을 물어보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근데.

 그때를 생각해 보면

 나는 친해짐에도 등급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Q. 이제는 변화했나요?

A1. 조금은 나아졌지요.

A2. 모르겠어요.

A3. 똑같아. 그냥 알기만 할 뿐이지.



 외톨이 이론서에는 끝이 없었다. 애초에 인간에게 있어 외톨이 엔딩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저 혼자 있을 때보다 타인과 있을 때, 진심으로 웃은 횟수가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에야 알게 되었다. 미련하게도 늦은 시기에 나는 내 울타리 밖으로 나서는 첫 발걸음을 떼었다.

 내 울타리에 닿기까지 긴 여정을 거친 이들에게도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는 걸 깨달았다. 밖으로 나섰을 때 보인 것은 아름다운 광경이었고, 내 울타리는 허접하기 짝이 없었는데도 몇몇의 다정한 이들은 내게 귀한 시간을 쓰며 문에 닿기 위해 노력했다.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


 세상의 기쁨을 느끼던 시절에 나는 나를 먼저 배웠어야 했다.

 타인의 세상을 짐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세상부터 알아가야만 했다. 어릴 적 떠난 이들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줬어야만 했다.

 이것이 나를 잊었을, 다정한 인연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예의.


 그리하여 이 글은 울타리 밖으로 여정을 떠나기로 결심한 사람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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