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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에서 Sep 20. 2021

육개장의 정의

나와 선생님과 탕웨이

 한국어 교재에는 미역국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 사람들이 생일에 먹는 음식이라고 미역국을 소개한다.

 내가 가르치는 교재에도 미역국을 끓이는 방법을 듣고 그림을 순서대로 나열하는 듣기 문제. 한국어를 배우면 미역국도 끓일 수 있는 알찬 구성이다. 수업 시간에 미역국 문제를 풀고 나서 학생들과 한국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한 학생이 육개장을 알고 있었다. 삼계탕교재에 나와서 외국인 학생들이 알고 있고 갈비탕 맵지 않고 맛있어서 즐겨 먹는다는 학생들이 많지만 육개장을 아는 학생은 드물어서 신기했다.     


 “와, 육개장을 알아요?”

 “네, 사람이 죽었을 때 먹는 음식이지요?

 “네? 아....”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조문을 몇 번 간 모양이었다. 그 학생 조문을 갔을 때마다 육개장이 나와서 육개장 사람이 죽었을 때 먹는 음식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미역국은 사람이 태어났을 때 먹는 음식, 육개장은 사람은 죽었을 때 먹는 음식. 이렇게 되는 건가.

이미지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예전에 생일 누가 학교로 꽃바구니를 보냈는데 내가 퇴근한 후에 도착했다. 민망하게도 다음 날 아침까지 내 책상 위에 꽃이 올려져 있었고 생일인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다음 날 동료 선생님이 나에게 와서 “선생님 어제 생일이었죠? 나도 어제 생일이었어요.”라고 했다.

생일이 같은 사람을 만난 게 처음이어서 신기하고 반가웠다.    

 

“아, 그래요? 저는 탕웨이만 알고 있었는데요. 선생님, 탕웨이가 우리랑 생일이 같아요. 나라마다 경국지색이 태어난 경사스러운 날인가 봐요.”

그런 시답잖은 말로 선생님을 즐겁게 해 드렸다.      


 작년 가을에 그 선생님과 같은 급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학교에 며칠 못 나오셨다. 어머니께서 많이 편찮으시다고 들었는데 결국 학교에서 온 문자 메시지를 보고 선생님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것을 알았다. 다른 선생님한테서 같이 조문을 가자는 연락이 와서 저녁 약속을 취소하고 바로 빈소로 갔다.

그날은 나의 생일이었고 그 선생님의 생일이기도 했다. 

     

 조문을 가서 상복을 입은 선생님과 마주 앉아 있으니 이상했다. 내가 두리번거리자 선생님이 '빈소를 차린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사람들이 별로 없다' 다.

‘아, 그런 게 아닌데...’


 사실 조문을 가서 두리번거리는 것은 나의 습관이다. 조문을 많이 가 보진 않았지만 매번 빈소에 들어서 내가 아는 익숙한 얼굴이 낯선 검은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사람들 속에 섞여 음식이 차려진 테이블에 앉 일회용 그릇에 담긴 육개장을 받으면 다시 한 번 마음이 이상해진다. 이 상황이 현실이 아니면 좋겠는데 점점 현실이 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어 자꾸 두리번거게 된다.


 그때도 강사실이 아닌 낯선 곳에서 선생님을 마주 하고 있는 상황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따가 그 공간이 사람들로 꽉 차 버리면 어쩔 수 없이 현실이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두리번다.


 조문을 가서 는 육개장의 맛은 ‘곤란한 맛’이다. 아직 현실 같지 않고 마음이 이상한 상태지만 상을 당한 사람이 와서 앞에 놓인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고,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맛 못 느끼면서도 그냥 입에 넣다. 개장이 빨리 좀 줄어들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사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고 마땅히 할 이야기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입에 넣을 게 있는 것이 다행지도 모른다.

  육개장은 먹을 일이 없으면 좋겠고 먹어야 한다면 최대한 늦게 먹고 싶지만, 나이가 들면서 조문을 갈 일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젠가 내가 육개장을 드시라고 사람들에게 권하는 입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생각만으로도 무섭다.




 나와 선생님과 탕웨이의 생일. 올해부터는 선생님한테 그날이 '그리운 사람이 더 그리워지는 날'일 것 같아서 축하한다는 말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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