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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에서 Sep 25. 2021

외국어와 예의의 공통점

 일로 만난 사이인 B가 방학에 연락을 해 왔다. 1년 정도 개인적으로 같이 업한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이 막 끝났을 때였다. 일이 끝난 기념으로 밥을 먹자고 해서 나갔다.  일는 동안  이야기를 자주 했었그날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 온 중 한 가지를 다음 학기에 시작하려고 시기와 방법을 논의했다.


 이틀  나는 B 다음 학기에 이미 일을 하 했으며 꽤 오래 전에 결정한 일임을 알았다. 사실을 알고 나니 이 하던 일이 방학 안에 끝나겠냐고 매일 묻던 B의 재촉도, 설 연휴까지도 일을 하자던 당황스러운 제안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러나 불과 이틀 전까지도 황을 알리지 않고 태연하게 다음 일 이야기를 같이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B 만나 미리 말했어 하지 않 물었다. B는 다음 일을 할 마음이 없었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그동안 나를 기만해 온 것을 미안해하지 않았다. 상대 기만하는 것쯤은 익숙한 일인 건가. 해도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의 경계가 다른 사람은 외국인보다 낯설다.

 

 약속 시간에 늦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대학원 동기 언니가 있다. 늦는 사람은 항상 있었고 매번 일찍 가서 언니의 분노를 지켜 보 나에게 언니가 말했다.

"남의 시간을 함부로 생각하는 건 정말 예의 없는 거야"


B가 함부로 생각한 나의 시간은 10~20분이 아니라 몇 달었다. 다음 일을 의논한 시간이 아까웠고 계획대로 일을 시작하지 못해 당황스러웠다.


 음 학기가 시작되고 B와 같이  일에 추가 작업 요청이 왔다. 추가 작업은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분량이 많았다.


 B가 갑자기 나를 보자고 했.

잘못은 없지만 이번 일이 저에게 어떤 계기가 되었어요.


'사과'의 뜻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이다. 사과 대신 을 시작하겠다는 말로 렸다.
 

제 이야기하는 걸 주저하는 사람이라 다른 일 하기로 했다고 말을 못 한 것 같아요.


 B와 '주저하다'의 조합 낯설었다. 그동안 자신의 일, 남편과 나눈 대화, 공황 장애를 앓는 여동생에 대한 걱정 많은 이야기 들어 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얼굴도 모르는 여동생의 이혼 진행 상그 시댁의 험담까지 들어 주는  부담스러웠다. '저하다' 그런 사람을 설명기에 적합한 단어 아닌 듯하다.

정작 해야 할 이야기는 상대방의 일과 일정에 영향을 주는 이야기인데 딴 얘기만 가득했 날들이다. 


 그리고 제가 일이 남아서 이러는 건 아니에요.


 마지막 말은 안 했으면 좋았을 텐데. 강연 '내가 돈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닌데'라고 하는 사람의 99.9%는 돈 때문에 그러는 거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는 웃기만 했기만 새겨 들어야 할 말이는 걸 알았다.


  B일을 맡긴 곳에 연락해 자신을 대신해서  연락을  이라 말한 후 나에게 메일을 보내왔다. B가 보낸 메일에서 심상치 않은 단어를 발견했다. 분명 내가 아는 '마무리'는 그런 뜻이 아닌데 '상대에게 일을 떠넘긴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한국말을 모르는 외국인처럼 굴어야 ' 하지 않고 보수만 나눠 받겠다'는 말을 전할 수 있는건가.


 추가 작업 끝났을 때 '최종 파일을 전달했으며 그동안 수고했다'는 인사를 B에게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 일이 완전히 끝 걸 확인한 B에게서 갑자기 메일이 왔다. 에 쓴 B의 메일에는 '에게 계기가 되었'고 했던 자신의 말을 번복하는 내용과 황당하고 무례한 말이 있었다. 답장을 보냈으나 반송이 되었다. B 덕분에 메일을 보내고 차단당하는 것이 아니라 메일을 받고 차단당하는 신선한 경험을 했다.

남의 메일에 테러까지 한 걸 보면 '계기' 같은 소리로 거짓 간증을 한 것이 억울나 보다. 마음에 없는 말은 하는 것이 아데.



 B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일이 끝난 후 보인 행동을 보며 예의가 있고 없고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예의가 마치 외국어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을 앞에 두고 그 언어로 열심히 떠들어 봤자 알아들을 리 없고 예의도 그렇다. 예의가 뭔지 모르는 사람은 계속 모를 텐데 그런 사람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도 결국 소용없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괜히 힘빼지 말고 배운 사람에게만 써야겠다. 외국어든 예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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