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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에서 Aug 17. 2021

불풀뿔 외쳐 본다.

우아하게 수업하고 싶은데...

나만 들리는 소리 


 한국어 발음 중에 언어권별로 특히 어려워하는 발음이 있다. 일본어에는 ‘어’ 발음이 없어서 일본 학생들은 ‘어머니’를 ‘어머니’라 하지 못하고 자꾸 ‘오모니’라고 한다. 중국 학생들은 ‘오’와 ‘우’의 구별을 어려워해서 자신을 ‘종국 사람’이라고 다.


국적에 상관없이 거의 모든 외국인들이 어렵다고 말하는 것도 있는데 ‘ㅂ, ㅍ, ㅃ’ 같은 세 가지 발음의 구분이다. 우리 너무나 명확하게 구별이 되는 이 세 가지 발음을 외국인들은 구별하기 어려워한다. ‘부산’을 ‘푸산’으로 발음하는 외국인을 흔히 볼 수 있는 이유다.


 ‘ㄱ, ㄷ, ㅂ, ㅅ, ㅈ’ 같은 평음, ‘ㅋ, ㅌ, ㅍ, ㅊ’ 같은 격음, ‘ㄲ, ㄸ, ㅃ, ㅆ, ㅉ’ 같은 경음은 발음을 하는 위치는 같은데 그 세기만 달라지는 소리다. 그래서 예사소리, 거센소리, 된소리라고도 부른다.

 내가 한국어를 말할 때 성대가 울리는지 안 울리는지 평생 신경 쓰지 않고 살아온 것처럼 발음하는 세기에 별 신경을 안 써 온 사람들에게는 이런 구분이 쉽지 않다. 발음하는 세기가 달라지면 아예 다른 소리가 된다는 것이 낯설 것이다. 유성음, 무성음 두 가지로만 발음을 나누며 살아왔는데 평음, 경음, 격음 세 가지로 구분을 하라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것을 가르치는 사람도 힘들다. 최선을 다해 세 가지 발음을 했는데도 학생들은 뭐가 다르냐는 반응을 보인다. ‘불,풀,뿔’ 이렇게나 다른데 다 똑같이 들린단다. 내가 같은 발음을 3번 한 줄 안다. 교실에서 나만 한국인이라서 가끔 외롭다. 


설명할 방법이 없네


 당연한 말이지만 소리가 다르게 들리지 않으면 다르게 발음할 수 없다. 외국어를 배워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발음을 배우는 어려움을 알 것이다. 발음은 아무리 자세한 설명을 듣고 아무리 반복해서 들어도 쉽게 터득이 되지 않는다. 나는 한다고 했는데 선생님이 틀렸다고 하면 점점 자신이 없어져서 소리가 작아지고, 간혹 제대로 발음했다고 칭찬을 받는데 도대체 아까랑 뭘 다르게 발음했는지 알 길이 없다. 나도 그랬다. 그런 마음을 알다 보니 학생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면 이제 그만 하고 넘어갈까 갈등이 된다.

 

 평음, 격음, 경음을 가르치는 날에는 준비해야 하는 것이 있다. 세 가지 발음의 차이를 알려주려고 수업 시간에 휴지를 가져 간다. 발음할 때 내뿜는 공기의 양을 비교하기 위해 많이들 쓰는 방법인데 휴지 한 장을 얼굴 앞에 두고 온 신경을 휴지에 쏟아 콧바람에 주의하며 ‘가카까 다타따 바파빠 사싸 자차짜’를 외친다. 정확하게 ‘가’를 발음하면 휴지가 약간 펄럭이고 ‘카’는 하늘 높이 펄럭이고 ‘까’는 꼼짝도 안 하게 된다. 인간 선풍기가 되어 미풍, 강풍을 시연하는 것이다. 평소에 발음할 때보다 과장해서 힘을 넣어 계속 발음하다 보면 점점 머리가 띵해진다. 이런다고 될 게 아닌데 왜 이리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인가.

 성대를 보여 줄 수는 없으니 성대의 긴장도를 표현해 보겠다고 경음에서 입에 과도하게 힘을 주고, 기식성이 확연히 드러나도록 격음에서 침이 튈 정도로 격한 바람을 내뿜는다. 한참 하다가 지금 얼굴이 몹시 흉하겠다는 생각에 이르면 잠시 숨을 고른다.

 설명을 하고 시연을 한다고 학생들의 발음이 확 달라지지는 않는다. 발음을 가르칠 때 사실 나도 답답하다. 하지만 답답한 걸로 따지면 아무리 해도 발음이 안 되는 학생 본인이 더 할 테니 우선 다시 가르쳐 보는 수밖에 없다.


현실적인 현실 발음


 외국어 발음을 배워서 정확하게 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열심히 배운 그 발음대로만 현지인들이 발음을 해 주는 것도 아니다. 한국어의 경우도 그렇다.

한국어를 가르칠 때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국제 통용 한국어 교육 표준 모형’이라는 것이 있다. 거기에는 발음 교육을 할 때 가르쳐야 하는 모음, 자음, 음운 현상이 나오는데 조금 더 고급 단계인 ‘현실 발음’이라는 항목도 있다. 실제 한국인들이 어떻게 발음을 하는지 알려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리고’를 한국 사람들이 ‘그리구’라고 발음하거나 ‘아파’를 ‘아퍼’, ‘불을 켜면’을 ‘불을 키면’처럼 발음하는 모음 변화가 있다. ‘감기 나았어’를 ‘감기 났어’로 발음하는 모음 축약이나 ‘밥 먹으려고’ 대신 ㄹ을 첨가해서 ‘밥 먹을려고’라고 발음하는 것도 그 예가 된다. ‘무릎이’를 [무르비]로, ‘밥솥에’를 [밥소세]로 잘못 읽는 것도 해당된다.

 이런 발음은 틀린 것이지만 매우 친숙하다. 친구는 ‘무릎이’를 [무르피]로 읽는 것이 너무 어색해서 도무지 무릎 같지가 않다고 했다. ‘무릎이’는 [무르피]보다 [무르비]로 읽는 것이 익숙하고, ‘밥솥에’는 [밥소테]가 아니라 [밥소세]로 읽어야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이름처럼 정말 현실적인 발음이다.


 실제로 학생들이 한국 친구의 말을 듣고 학교에서 배운 것과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선생님 제 친구 ‘아퍼’라고 하던데요. ‘그리구’라고 하던데요.” 등등. 발음법에는 안 맞지만 학교 밖에는 이런 현실적인 발음이 존재한다. 현실 발음도 당황하지 않고 찰떡같이 알아들을 수 있다면 그 학생은 진정한 한국어 능력자로 등극할 수 있다. 그러나 우선은 자신이 하는 말을 한국 사람들이 알아들어야 하니 될 때까지 외쳐야 한다. 가카까 다타따 바파빠 사싸 자차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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