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교재에는 미역국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 사람들이 생일에 먹는 음식이라고 미역국을 소개한다.
내가 가르치는 교재에도 미역국을 끓이는 방법을 듣고 그림을 순서대로 나열하는 듣기 문제가 있다. 한국어를 배우면 미역국도 끓일 수 있는 알찬 구성이다. 수업 시간에 미역국 문제를 풀고 나서 학생들과 한국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한 학생이 육개장을 알고 있었다. 삼계탕은 교재에 나와서 외국인 학생들이 알고 있고 갈비탕도 맵지 않고 맛있어서 즐겨 먹는다는 학생들이 많지만 육개장을 아는 학생은 드물어서 신기했다.
“와, 육개장을 알아요?”
“네, 사람이 죽었을 때 먹는 음식이지요?”
“네? 아....”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조문을 몇 번 간 모양이었다. 그 학생이 조문을 갔을 때마다 육개장이 나와서육개장을사람이 죽었을 때 먹는 음식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미역국은 사람이 태어났을 때 먹는 음식, 육개장은 사람은 죽었을 때 먹는 음식. 이렇게 되는 건가.
이미지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예전에 내 생일날누가 학교로 꽃바구니를 보냈는데 내가 퇴근한 후에 도착했다. 민망하게도 다음 날 아침까지 내 책상 위에 꽃이 올려져 있었고 생일인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다음 날 동료 선생님이 나에게 와서 “선생님 어제 생일이었죠? 나도 어제 생일이었어요.”라고 했다.
생일이 같은 사람을 만난 게 처음이어서 신기하고 반가웠다.
“아, 그래요? 저는 탕웨이만 알고 있었는데요. 선생님, 탕웨이가 우리랑 생일이 같아요. 나라마다 경국지색이 태어난 경사스러운 날인가 봐요.”
그런 시답잖은 말로 선생님을 즐겁게 해 드렸다.
작년 가을에 그 선생님과 같은 급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학교에 며칠 못 나오셨다. 어머니께서 많이 편찮으시다고 들었는데 결국 학교에서 온 문자 메시지를 보고선생님어머니께서 돌아가신 것을 알았다. 다른 선생님한테서 같이 조문을 가자는 연락이 와서 저녁 약속을 취소하고 바로 빈소로 갔다.
그날은 나의 생일이었고 그 선생님의 생일이기도 했다.
조문을 가서 상복을 입은 선생님과 마주 앉아 있으니 이상했다.내가 두리번거리자 선생님이 '빈소를 차린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사람들이 별로 없다'고했다.
‘아, 그런 게 아닌데...’
사실 조문을 가서 두리번거리는 것은 나의 습관이다. 조문을 많이 가 보진 않았지만 매번 빈소에 들어서서 내가 아는 익숙한 얼굴이 낯선 검은 옷을 입고 서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사람들 속에 섞여음식이 차려진 테이블에 앉고 일회용 그릇에 담긴 육개장을 받으면 다시 한번 마음이 이상해진다. 이 상황이 현실이 아니면 좋겠는데 점점 현실이 되고 있는 것 같아서 불안하고 이상한 기분이들어 자꾸만 두리번거리게 된다.
그때도 강사실이 아닌 낯선 곳에서 선생님을 마주 하고 있는 상황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따가 그 공간이 사람들로 꽉 차 버리면 어쩔 수 없이 현실이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두리번거렸다.
조문을 가서 먹는 육개장의 맛은 ‘곤란한 맛’이다.아직 현실 같지 않고 마음이 이상한 상태지만 상을 당한 사람이 와서 앞에 놓인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고,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맛을 못 느끼면서도 그냥 입에 넣는다. 육개장이 빨리 좀 줄어들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사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마땅히 할 이야기도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입에 넣을 게 있는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그런 육개장은 먹을 일이 없으면 좋겠고 먹어야 한다면 최대한 늦게 먹고 싶지만, 나이가 들면서조문을 갈 일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언젠가 내가 육개장을 드시라고 사람들에게 권하는 입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생각만으로도 무섭다.
나와 선생님과 탕웨이의 생일. 올해부터는선생님한테 그날이 '그리운 사람이 더 그리워지는 날'일 것 같아서 축하한다는 말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