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 내게 우울증이라는 것이 찾아왔다.
청소년 시절에도 우울한 감정과 우울증은 있었지만, 그것과는 명백히 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극심한 외로움에 사무쳤다. 대학 시절 행복했던 친구들의 배신과 길을 잃은 4학년의 취업 준비 때문이었을까? 키우던 강아지를 못 키우게 되어서였을까? 하루 종일 집안에 박혀 어둠 속에 갇혀있었다. 매번 죽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결국 나는 정신과를 찾았다. 처음이었다. 동네의 오래된 작고 낡은 신경 정신과 의원이었다. 할아버지로 보이는 의사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요즘 잠은 잘 자나요?”
“아니요.”
“밥은 잘 챙겨 드시고요?”
“아니요.”
“검사 결과 우울감이 아주 높아요.”
“그렇군요.”
왜, 왜 그런 걸까? 모르겠어요. 제가 왜 이렇게 됐는지. 알 수 없다고 대답하려고 하는 순간, 이상하게 내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눈에서 눈물이 먼저 떨어졌다. 의사는 내게 책상에 놓인 티슈를 뽑아 손에 쥐여주었다. 한참을 내가 울었는데도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나를 기다려 주었다.
“괜찮아요. 말하고 싶을 때 말하면 돼요. 약 처방해 줄게요.”
23살. 처음 우울증 약을 처방받았고 몇 달간 약을 먹으며 취업 준비를 했다. 고통스러우면서도 약을 먹으면 숨을 쉴 수 있었다. 나는 제일 먼저 엄마에게 전화해 이 사실을 말했다.
“엄마, 나 우울증 걸린 것 같아. 병원 가서 처방받고 약 먹고 있어.”
엄마는 나의 말에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게 혼자 사는 것 때문에 힘들면 집에 오라고 권유했다. 외롭고 지쳤던 나는 그게 맞는 걸까? 고민했다.
학원에 가지 않는 날은 24시간 중 자는 시간을 뺀 모든 시간 게임을 했다. 아프고 우울한 감정을 그나마 지울 수 있는 것은 게임이었다. 불을 켜는 것도 하지 않고, 방 안에서 모니터 불빛 하나로 살았다.
게임을 하다가 정신이 이상한 것 같으면 침대에 거꾸로 상체를 내리고 머리를 쏠리게 하는 이상한 자세를 취하거나, 나의 멍청했던 행동들이 떠오르면 오열을 했다.
감정이 격해지면 벽에 머리를 박았고, 소리를 질렀다. 작은 방 안, 나를 말려주는 이는 그 누구도 없었다.
3층밖에 안 되는 높이의 자취방에서 떨어져도 죽지 않을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떨어지는 상상을 수백 번 했다.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어떻게 하면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않고 죽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생각도 깊어졌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버텨보자’라는 이상한 오기에 사로잡혀 암막 커튼을 짙게 치고, 어둠 속에서 생각의 늪으로 떨어졌다.
울다 지치면 자고, 일어나서 머리를 박고 다시 자고, 끝이 나지 않았다.
깊은 우울은 나의 자아를 산산이 부수기에 충분했다.
대학교에 심리 상담센터가 있었어요. 그곳에는 나와 같은 우울증에 걸린 학생들이나 취업 고민이 있는 학생들을 위한 상담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고, 우울증은 상담 치료를 받으면 더 좋아진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상담센터를 찾아가 상담을 신청했죠. 매주 1번, 1시간 동안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선생님이 배정되었습니다.
선생님은 나의 과거를 하나씩 물어보셨어요.
“어떻게 자랐어요? 가족들하고 관계는 어때요?” 한주 한 주 나의 이야기를 꺼내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지금의 내가 왜 이런 사람으로 자랐는지 어떤 환경과 배경이 있었기에 이런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짚어주었습니다.
무서웠던 아버지와 나약한 어머니,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지 못한 나. 그로 인해 생긴 살기 위한 방어기제가 내게 생겨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딘가 삐뚤어져 있었고, 인간관계를 풀어가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 엉망진창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어요. 상담을 받으며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나의 방어기제가 발동되는 순간이 어느 때인지를 파악하게 됐어요.
그리고 방어기제가 공격성을 드러내지 않도록 조절하는 방법을 선생님이 가르쳐주었고, 관계를 유지하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나의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그때 처음 배웠어요.
과거를 꺼내 얘기하는 것은 쉽지 않아요. 어두운 과거 잊고 지내고 싶었던 고통스러운 기억을 꺼내면서 그때의 감정도 다시금 내 눈앞에 생생히 나타나기 때문이죠. 상담을 받는 1년 동안, 한 번도 울지 않고 상담실을 나와 본 적이 없어요. 그러나 얘기하고 나오면 해결된 것은 없었으나 후련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상담센터 문을 두드리는 것은 제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많은 걱정들이 있었죠. 내가 상담을 다닌 다는 걸 누군가 알게 되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부터 시작해서 두려웠어요.
그러나 눈 딱 감고, 한 번만 상담센터 문을 두드려보세요.
그 안에는 당신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들어준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지도 몰라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을지 몰라도 당신의 마임에 후련함이 조금이라도 생긴다면 그것도 또 다른 해결 아닐까요. 그것부터가 한 발짝 나아가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