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왔어도 만성이 되어버린
우울증은 좀처럼 나아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아빠께서 기대하고 있던, 자격증 시험에 계속해서 떨어졌다. 사실, 내심 마지막 시험을 보고 나왔을 때, ‘아, 이제 됐다.’라고 생각했다. 100점까지는 아니어도 이 정도면 합격할 정도야.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탈락이었다. 점수는 59점이었다. 고작 1점 차이로 떨어진 것이었다. 좌절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남들은 다 해내는 것을 나만 못해냈다는 패배감에도 빠졌다.
가족들은 어쩔 수 없으니, 취업이나 하라 말했다. 가족들에게는 내가 우울증에 걸려 매일 울던, 약을 먹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결국, 가족들의 등쌀에 못 이겨 취업시장에 뛰어들었다. 자격증이 없는 나는 원하는 조건보다 못하는 곳에 입사지원서를 넣었고, 원하지 않는 곳에 면접을 보러 가야만 했다.
면접을 보러 간 한 군데에서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잘해요?”
“프로그램 다룰 줄 알고, 어느 정도 표현 가능합니다.”
나의 말에 그는 하, 하고 짧은 비웃음을 덧붙여 말했다.
“잘한단다.”
사장으로 보이던 그 사람은 나의 말에 자신의 직원들에게 들으라는 식으로 말을 했다.
그의 말에 심장이 쪼여지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뭐, 됐고. 어차피 우리는 많은 거 안 원해. 다음 주부터 나올 수 있지?”
사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반말이었고, 내게 합격이라는 말도 없이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고 했다. 그 순간 거절의 말도, 알겠다는 말도 입에서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큰 목소리로 말했다가는 당장이라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서려 했다.
“그럼 들어가보겠습니다.”
“어이.”
사장이 나가려는 나를 다시 불러 세웠다. 나는 놀라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턱짓으로 다른 직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선배님들한테 인사하고 가야지.”
“아…. 안녕히 계세요.”
얼떨떨한 상황에 어쩔 줄 몰랐다.
결국 나는 직원들을 바라보며 인사를 하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사무실 문을 닫고, 계단을 내려오며 숨이 안 쉬어졌다. 내가 느낀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차가웠다. 사장의 비웃음과 떨떠름한 표정, 강압적인 말투와 반말들이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화도 나고, 억울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속상했던 것은 내가 고작 이런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에게 면접에 있던 이야기 해주었다. 부모님은 별것 아닌 일처럼 내게 얘기했다.
“회사 위치도 가깝고, 괜찮은데 뭘 그러니? 월급도 괜찮지, 그 정도면. 그냥 며칠 다녀보고 정 아닌 것 같으면 그때 그만둬. 언제까지 놀거니.”
엄마가 말했다. 그리고 옆에서 언니가 거들었다.
“회사 다 그래. 그냥 다녀. 그만 놀고.”
그리고 아빠는 웃으면서 얘기했다.
“어차피 별 배울 것도 없어. 몇 년 다니다가 나와서 나랑 일하면 돼. 정 그러면 다른 곳 가던가.”
가족들은 여전히 나의 우울증과 공황 증상보다는 일단 취업하는 것을 우선시 여겼다. 특히 아빠는 자신과 일할 미래를 생각하고, 취업은 자신과 일할 미래를 위한 발판일 뿐 중요한 것이 아니라며 내게 강조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자발적으로 아빠와 일하고 싶다고 내 입으로 말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빠의 반복적인 강요와 권유에 그렇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결국, 나는 또다시 취업시장으로 발을 디뎠다. 그리고 두 번째 면접도 비슷한 상황과 비슷한 무례함으로 상처받고, 집으로 돌아왔고, 그때의 나는 누군가의 무례함에 저항할 수 없는 무력한 상태였다.
나의 자발적인 생각과 의견 그리고 호불호 따위는 배제된 취업 준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