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간 취업에 실패하고, 집에서 백수로 지냈다.
백수로 지내는 내게 가족들은 불만이 가득했다. 어느 날, 나는 여느 때처럼 힘이 없어 불을 끈 채로, 침대 속에 누워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가족들은 어둠 속 조용한 내가 자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밖에서 엄마와 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쟤는 힘들다는 거, 우울증이라는 거 다 거짓말이야.”
톡 쏘는 목소리로 언니가 말한 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왜?”
엄마는 덤덤하게 되물었다.
“지 필요할 때만 우울하다 하잖아. 남자친구 다 만나고, 놀 거 다 놀고 일은 안 하고, 그게 무슨 우울증이야.”
“아프다잖아.”
간헐적 우울증이야. 내쫓아버려.
방문 사이로 들려오는 목소리들이 한 글자 한 글자 망치로 못을 두드리듯 가슴속에 박혔다.
쾅- 쾅- 쾅- 하고 박히는 기분이었다. 당장 나가서 '아니야.'라고 말해야 하는데 가슴이 너무 아팠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흐느끼는 목소리가 혹여나 들릴까 봐,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내가 우는 것이 들킨다면 무슨 말을 할지 모르니까. 몸이 덜덜 떨렸다.
세상에서, 사회에서, 학교에서, 집으로, 집에서 방으로 그리고 이불속으로 그리고 그다음은 ….
‘나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는데…’ 라고 생각하는 와중에도 가족들은 내 걱정 따위 없이 밖에서는 여전히 열띤 토론을 했다.
엄마와 언니의 대화는 나를 생각과 우울의 늪으로 끌어 내리기에 충분했다. 아무런 저항 없이 나는 그 늪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정말로 간헐적 우울증일까?
아니, 아니야. 나는, 나는-, 평생이 우울한 사람이었어.
이 우울함은 항상 나의 내면에 있었고, 숨을 죽이고 있었을 뿐이야.
결국 또 고개를 들고 올라왔지. 그리고 나를 온전히 덮어버렸어.
나는 왜 우울하지? 왜, 왜, 왜, 나는 우울을 가지고 태어난 걸까? 이유는 모르겠어.
아니, 이유가 중요한가? 이미 나는 우울함 자체야. 아마 평생 우울증을 안고 살아갈 거야.
우울하고, 우울하고, 우울해서 그 무엇도 스스로 할 수 없을 것 같아.
지금 나가라고 하면 난 살 수 있을까?
아니, 돈을 버는 것, 내가 나를 책임지는 것,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야.
내가 사라져 주는 것을 모두가 원하는 것 같아. 나가는 것 말고 다른 선택도 있잖아.
죽어. 그래. 죽어서 사라져 주자. 이렇게 사는 것보다는 죽는 게 나아. 죽어야겠어.
죽는 게 맞아. 이렇게 사는 건 의미가 없어. 내가 없어지면 모두가 편안해질 거야.’
밖에서는 여전히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이제 그 목소리가 웅웅 귓가에 울릴 뿐이었다.
“다른 애들 동생들은 열심히 사는데, 내 동생은 집에서 놀면서 우울증이라고 하고, 남자친구는 만나고 그게 무슨 우울증이야. 지 필요할 때만 우울증이면 나도 우울해. 세상에 안 우울한 사람이 어딨어?”
“그만해라.”
“아 됐어. 진짜 엄마도 적당히 해. 그렇게 감싸니까 애가 그래도 되는 줄 아는 거야.”
쾅-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언니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은 유독 길었다. 우울함에 잠식되어 자발적 죽음을 선택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