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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치 Apr 14. 2024

졸업사진 찍고 싶지 않다고 했잖아.

응급실

집으로 돌아온 것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이유는 졸업사진을 찍기 싫다는 이유였다. 학교에서 졸업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사가 학교에 방문하는 날 나는 도망쳤다. 선생님한테 말한 것도 아니고, 부모님한테 말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마음대로 담을 넘어 집으로 왔다.  


"네 마음대로 집에 오면 어떻게? 빨리 학교로 다시 안 가?"

"안가!"

"엄마 죽는 꼴 보고 싶구나?"

"엄마가 왜 죽는데?"


엄마는 찬장 어딘가에서 약통을 가져왔다. 평소 잠이 잘 오지 않아서 먹던 수면제였다. 작고 하얀 약이 한가득 담겨있는 통이었다. 수면유도제였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엄마는 그 약통을 가지고 오셔서 내게 협박했다.


"엄마 이거 먹고 죽을 거야. 너 때문에 살 수가 없어. 맨날 학교를 간다 하고, 이렇게 돌아오고 엄마 속 썩이고, 안 그래도 엄마도 힘든데."

"엄마가 왜 죽어!!"


내가 소리쳤다.

우리의 감정은 격해질 때로 격해졌다. 엄마는 약통에 약들을 한 손에 쏟아부으며 먹을 것처럼 손을 바르르 떨며 이렇게 말했다. 한 손에는 약통, 다른 한 손에는 가득한 하얀 약들이 있었다.


"지금 학교 갈래? 아니면 엄마 죽는 꼴 보래?"


아..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죽으면 나는 살아갈 이유가 없다. 지금도 겨우 살아가고 있었는데 나 때문에 엄마가 죽는다니... 차라리 내가 죽어야지.'


엄마는 내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자 약을 입에 털어 넣기 위해 입으로 가져갔다. 그 모습이 내 눈에 아주 느리게 3배 정도 느리게 슬로모션으로 보였다.


그리고 순시 간에 나는 엄마의 손에 있는 약을 모조리 뺐었다. 그리고 모두 내 입에 넣고, 물을 삼켰다.


"엄마가 죽으면 내가 살 이유가 없어... 엉엉.."

"그걸 진짜 먹으면 어떻게 뱉어!!! 빨리!!"



 그렇게 엄마는 나를 데리고 응급실에 갔다. 약을 먹고 바로 응급처치를 했고, 다량의 약이었지만 그렇게 치명적이 약은 아니었다고 했다. 엄마는 어린 나를 협박하면 학교에 갈 거라고 생각해서 한 행동이라고 했다. 그리고 조용히 우리만의 비밀로 남기자고 했다.


아빠가 알면 큰일 난다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그럴 것 같았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졸업사진은 결국 그날 안 나온 친구들을 모아서 한번 더 사진을 찍었고, 결국 찍었다.


지금 다시 졸업사진을 바라보면 차라리 그때 같이 찍을 걸.이라고 후회가 된다. 아이들과 동떨어져서 혼자 찍은 사진이 오히려 내가 왕따였음을 보여주는 사진 같아서 더 씁쓸했다.



 누군가 내 앞에서 죽는다고 할 때의 공포는 누가 나를 죽인다고 할 때의 공포와 맘먹는 것 같다. 특히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내 앞에서 죽는다고 할 때는 이 상황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아니면 꾸준히 죽기를 바랐던 것 일지도 모른다. 당시 나는 꾸준히 우울했고, 별일 없이 슬펐다. 아마도 그때도 우울증이 아니었을까 추측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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