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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치 Apr 15. 2024

탈출계획

 중학교 시절부터 정확히는 컴퓨터 학원을 다니고 내가 엑셀을 하게 된 후부터였을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가족들의 '컴퓨터 담당'이었다. 모든 컴퓨터 관련 업무?라고 하는 것도 웃기다. 컴퓨터 관련일은 내게 다 맡겼다. 가족의 모든 공인인증서를 받는 것도 간단한 메일, 아이디 만들기도 모두 내 차지였다.



하루는 학교에 있을 때 문자가 왔다.


[집으로 오렴. 아빠 일해야 돼.]


학교에 있는 시간에 어떻게 집으로 가?라고 답문했고, 엄마는 아프다고 말하면 되지 않냐며 짜증을 냈다.

그리고 선생님께 보내달라고 엄마가 거짓말을 해줄 테니 집으로 오라고 했다. 그렇게 선생님께 거짓말을 하고 조퇴를 한 후 집에 와 아빠의 서류 작업을 해준 적도 있다.


아빠는 그 일이 당연하다고 했다. "네가 학교 다니고, 밥 먹고 입고 쓰는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학교보다 중요한 일이다." 그때는 그게 가스라이팅인지도 몰랐다. 당시에는 그런 단어가 유행하지도 않았고,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배워온 게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3학년 때쯤 꿈이라는 게 생겼다. 요리사가 되는 것이었다.  가족들의 밥을 차려주는 것에 재미를 붙이기도 했고, 결정적인 것은 요리고등학교라는 곳이 있고, 그곳이 기숙사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1학년때 왕따를 당하면서 그나마 조금 하던 공부도 놓아버렸던 터라 내신은 엉망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요리고등학교는 높은 내신의 우등생들이 진학하는 학교였다. 알았더라면 왕따고 뭐고 공부를 했을 것인데라고 후회했다.


3학년 때 급하게 공부를 했지만 성적은 따라주지 않았고, 아무리 노력해도 2년간의 망친 성적을 돌려놓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당연한 탈락.


내 첫 번째 탈출 계획은 그렇게 당연하게 실패했다. 스스로를 집안에서 노예라고 생각했다. 가족들은 내게 피해자 코스프레를 그만하라고 했다. 하지만 아빠의 짜증과 화를 들으며 3년간 사무보조업무를 했던 것은 나였다. 수많은 견적서와 계약서, 지금 봐도 잘 모르는 법적용어들을 중학생 때 이미 알아보고 하고 있었다. 집안의 회사원이었다.



 나의 탈출계획은 3년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대학교. 나는 어느 대학을 가는 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나마 꿈이라는 것은 요리를 하는 거였는데, 1순위는 집과 최대한 거리가 먼 곳이었다. 나는 3년간 이를 갈았다.


반드시 이 집을 나가리라. 자유를 찾으리라.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뭐야? 라고 물으면 자유요. 라고 말했던 시기다.  내게 족쇄가 있는 듯한 상상을 했다. 집안에 가는것이 답답하고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두번째도 좋아하는 단어가 뭐야? 라고 물으면 돈이요.


자유와 돈


 내게 필요한 것은 자유 그리고 돈이었다. 내가 집안에 묶여 있는 이유는 늘 돈이었다. 아빠의 돈을 받고 있으니 희생해야한다. 너는 돈이 없으니 참아야한다. 우리가족을 위해 돈을 위해 일을 하기를 강요했다. 지긋지긋한 돈이 싫으면서 동시에 돈이 필요했다.


조금의 용돈을 받으면서 그 돈을 3년동안 매달 2만원씩 적금을 넣었다. 친구들이랑 떡볶이 사먹기도 바쁜 돈으로 적금을 하고, 남는 돈이 있으면 펀드를 했다. 펀드가 뭔지도 잘 모르면서 대충 주어들은 걸로 무작정 시작했다.


그리고 고등학교2학년 기말고사를 보고 부터 나는 대학교를 알아보았다. 집에서 절대 통학할 수 없는 거리의 대학교만 찾아서 순위를 매겼다. 탈출의 두번째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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