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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치 Apr 20. 2024

탈출하면 끝인 줄 알았지?

대학을 가다.

 최종적으로 원하는 대학교의 원하는 과를 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통학할 수 없는 거리에 있는 거리의 대학교. 자취를 해야만 하는 대학교라는 것은 지켜냈다. 그 사실 만으로도 나는 대학진학을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하는 직업에 맞는 과를 진학한 전문적인 인력으로 거듭났다.

기본적으로 회사의 경리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설계업무까지 진행하는 그런 경리가 된 것이었다.


회사에서 투자를 해서 직원을 가르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내가 딱 그런 케이스였다. 가족이지만 가 족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는 회사원이자 딸이었다. 진짜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것도 아닌데, 고등학교 때까지 주야장천 아빠 일을 도왔던 것들을 생각하면 어쨌든 대학진학을 하여 집을 탈출한 것은 반은 성공했다고 봐도 됐다.


반만 성공했다.


영원히 집을 나온 게 아닌 어쨌든 또다시 대학등록금을 받고, 용돈을 받고, 자취방 월세를 지원받는 대학생이 되었기에 아빠의 '돈'에서는 탈출하지 못했다. 그랬기에 본가에 가야만 했고, 내가 본가에 와야만 하는 명분이었다.


본가에 가게 되면 밀어두었던 일이 산더미처럼 내게 몰려든다. 방학 때면 본가에 올라가 일을 했다.

완벽한 탈출은 없었다.


그래도 그전에 비하면 반은 자유를 얻었기에 심적으로 안정적이고, 진짜 나를 알아가는 시기였던 것 같다. 아르바이트도 하고, 돈도 벌면서 부족한 용돈을 쓰고, 남들처럼 대학교를 다니면서 낮에는 과제를 하고, 밤에는 술을 마시며 친구들과 어울렸다. 부모님의 간섭 없이 자취를 하며 자유를 만끽하고, 내가 누군가에게 늘 잘못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행복했다.


집 안에 있을 때면 늘 잘못하고, 이상한 아이였던 내가 대학을 가고 자취를 하니 그제야 내가 보였다. 노는 것을 좋아하고, 도전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고, 척척 할 일을 해내는 아이였다. 워낙 어린 시절부터 집안일을 해와서였는지 자취를 하는데 어려움도 없었다. 재밌었다.


한 3년간은 어렵지 않고, 행복했던 것 같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언니는 본가에서 대학을 다녔다. 그런 내가 부러웠던 것인지 나의 빈자리를 언니가 채워야 해서 싫었던 것인지 나에게 자주 짜증을 냈다. "너는 밖에 있으니까 행복한 줄 알아!"라는 말을 자주 했다.


방학 때 와서 밀린 업무를 하더라도 평소에 만들어야 하는 서류들을 담당할 사람이 필요했던 아빠는 언니를 불렀다. 언니가 나의 빈자를 채우는 역할이었다. 어린 남동생은 엑셀을 못한다는 핑계로 하지 않았고, 이미 다 큰 대학생인 언니는 핑계를 댈 것도 없었다.


평소에 항상 내가 하던 일을 언니가 하니 짜증이 났을 테고, 워낙 무언가를 시키면 잘하지 않았던 언니라 아빠와 언니는 자주 싸웠다고 했다. 그럴 때면 엄마가 내게 전화를 해서 하소연을 했다.


"넌 밖에 있으니까 다행인 줄 알아."


살얼음판이 된 집안 분위기, 그 안에서 숨 쉬는 것 걸어 다니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엄마 말처럼 내가 그 자리에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안심했다. 집에 나오기를 백번 천 번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힘들면 이혼하라며 여러 번 권유했다.


"그 집에서 도망치니 조금 숨이 쉬어진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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