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만한 영혼

<테스>

by 명규원

어제 밤늦도록 혼자 TV에서 영화를 보았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 나타샤 킨스키가 주인공 테스 역이다.

1981년도 개봉 당시 포스터에서 여배우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을 잊을 수 없었는데 이제야 보게

되었다. 그런데 꽃보다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별처럼 드높은 정신을 지닌 테스를 다시 만났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부자가 된 더버빌 가에 하녀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아침 햇살처럼 신선한

처녀의 아름다움이 꺾이게 된 테스! 그러나 그녀는 그릇된 길에서 자신을 돌이키고 진실해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여인이었다.

안락한 삶과 즐거움을 누리려 하거나 바라지 않고 죄책감과 고통을 찾아 나서는 데 주저하지도 않았다.

목장에서 종일 소젖을 짜는 일을 하다가 주일에는 젠틀하게 변신하는 주인을 따라 잘 차려 입고

교회에 간다.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영혼'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 때, 테스는 죽어서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가끔 영혼이 몸 밖으로 나오는 것 같다고 말해서 주의를 끈다.

"...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으면 나 자신을 전혀 의식할 필요가 없어요."

하루하루 고단한 노동과 역경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잊을 정도로 '충만한 영혼'을 지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말이 아닌가! 영화를 통해 테스를 재발견하게 되었다. 그녀는 순수하고 자유로운 가슴으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사랑을 바라고 지켰다. 비록 가난한 가족을 돌봐야 하는 처지였고 삶은 가혹할 수밖에 없었을지라도.



"... 클레어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생활의 중요성이란 외부적 변화보다도
자신의 주관적 경험에 달려있음을 배웠다. 감수성이 예민한 농부가
우둔한 왕자보다도
더욱 진지하고, 풍부하고, 적극적인 생활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토마스 하디의 생각이 압축된 문장이다. 작가는 보수적 편견과 인습이 빚어낸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 채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 나중에야 자신의 기대와 환상이 헛된 것이었다는

사실과 테스의 진실한 사랑을 깨닫고 돌아온 클레어! 하지만 아름다운 한 여성이 희생되는 비극을 통해

시대적 한계에 갇힌 사람들을 각성시키는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끝없이 펼쳐진 평원 가운데 있는 '스톤헨지'가 나온다. '불가사의'한 돌기둥은 해돋이 방향과 동지 해넘이 방향을 연결하는 선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TV다큐로 보던 것보다

주인공들과 같이 있으니 작게 느껴졌다. 양들이 풀을 뜯는 드넓은 초원은 화면에 잡히지 않았지만 원시적인

모습 그대로 나온다. 여명을 지나 태양이 거석들 사이로 떠오르는 장면을 보니까 까마득한 옛날(BC2500년 전쯤), 사람들이 제사를 지낸 곳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가보고 싶은 그곳을 배경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바로 거기서 희생제물이 된 테스가 잡혀가고...!


#브런치 북


keyword
이전 02화미래에서 온 시든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