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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해석가 Oct 09. 2021

꽃같이 아름답던...

<화양연화> 해석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은 언제인가요? 아직 그런 시간이 오지 않았을 수도 있고, 이미 왔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다룰 영화 <화양연화>는 인생에서 꽃과 같이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의미입니다. 당신의 화양연화를 회상하며 즐기시면 그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올 듯합니다.


 <화양연화>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해석이 가능합니다. 먼저, 왕가위 감독의 영화의 특징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작 중 첸 부인(장만옥)은 항상 치파오를 입고 있습니다. 주목할 점은 옷에 새겨진 문양입니다. 대부분 꽃무늬가 그려진 옷을 입고 있죠. <화양연화>라는 제목에 비춰 보았을 때, 첸 부인에게 차우와의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임을 암시합니다.


  왕가위 감독의 작품에는 중요한 3가지 상징물이 있습니다. 바로 시계와 거울, 유리입니다. <화양연화>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상징물들이죠. 먼저, 시계는 추억과 향수(鄕愁)를 상징합니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꽃처럼 아름다운 이 순간도 다시 돌아오지 않죠. 영화는 시계를 통해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소중함을, 그리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거울과 유리는 상충하는 두 내면을 상징합니다. 첸 부인과 차우에게는 배우자가 있죠. 둘의 내면에서 배우자에 대한 죄책감과 서로에 대한 사랑이라는 두 감정이 충돌합니다. 감독은 유리와 유리가 만나는 지점을 카메라에 담아서 한 사람이 겹쳐 보이는 효과를 연출합니다. 이 기법은 주로 첸과 차우가 둘만 있는 상황에서 사용되는데, 감정 충돌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거울에는 한 가지 기능이 더 있습니다. 바로 차우와 첸 부인이 같은 곳을 바라보게 만드는 기능이죠. 예상보다 이른 주인집 사람들의 복귀로 첸 부인이 차우의 집에 발이 묶여 있는 장면을 기억하시나요? 해당 장면에서, 감독은 차우의 얼굴을 두 번 반사시켜서 첸 부인과 같은 곳을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서로 떨어져 있음에도 한 화면 안에 잡히도록 연출했죠.


 <화양연화> 뿐만 아니라 왕가위 감독의 작품은 시대적 배경을 기준으로도 해석됩니다. 시대적 배경을 대입하기 전에 먼저, 홍콩의 역사를 잠시만 살펴보죠. 19세기 중후반, 유럽이 식민지 확장 정책을 펴던 시기, 영국은 중국과 두 차례의 아편전쟁을 벌입니다. 영국은 전쟁에서 승리했고, 불평등 조약을 통해 홍콩을 식민지로 얻죠. 홍콩은 구룡반도, 신계지역, 홍콩 섬 세 개의 구역 나뉩니다. 다른 유럽 열강들도 식민지 확장을 했기에 영국이 홍콩 전부를 할양받기에는 부담이 되었습니다. 눈치를 본 영국은 홍콩 섬과 구룡반도는 영국령으로, 신계 지역은 99년 임대 방식으로 조약을 맺습니다. 이후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공산당이 중국의 제1당이 되고, 불평등 조약이었다는 근거로 홍콩 지역 전체에 대한 반환을 요구합니다. 영국은 이 점을 인정하고 홍콩 반환을 진행합니다. 이때, 홍콩 사람들은 정치 체제 변화에 적응할 시간을 요구하였고, 그 결과 2047년까지 기존의 체제를 인정한다는 조건으로 반환하죠. 당시 홍콩인들은 반환 찬성과 반대로 갈려서 대립했습니다. 홍콩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았고, 다른 국적을 취득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글 초반, 필자는 첸 부인이 입은 치파오를 무늬에 초점을 맞춰 해석했습니다. 이를 홍콩의 역사에서 비춰보면 조금 다른 해석이 나옵니다. 첸 부인이 입고 있는 치파오는 중국을 상징합니다. 항상 양복을 입고 있는 차우와 대비되기 때문이죠. 양복은 서양의 의복을 지칭합니다. 결국 차우의 양복은 영국을 상징합니다. 그렇다고 첸 부인이 중국을, 차우가 영국을 상징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 둘은 홍콩을 상징하죠. 이들이 처한 상황은 당시의 홍콩의 상황과 유사합니다. 모두 결혼하였지만, 상대에게 끌렸고 결과적으로는 다시 본래의 짝으로 돌아갔죠. 쉬운 설명을 위해 먼저, 차우가 홍콩을 상징한다고 설정하겠습니다. 차우(홍콩)에게는 원래의 짝인 아내(중국)가 있습니다. 그러나, 첸 부인(영국)과 밀회를 즐기죠. 이후 첸과 차우가 멀어지자 각자는 본래의 짝(중국)에게로 돌아갑니다. 차우를 첸 부인으로, 차우의 아내를 첸 부인의 남편으로 바꾸도 성립합니다. 차우와 첸 부인은 홍콩이 현재 처한 상황을 암시합니다. 


 필자는 또한, 유리가 한 사람의 마음속 상충하는 마음을, 시계가 남은 시간을 상징한다고 말했습니다. 시대적 배경에 대입하면, 시계는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기까지 남은 시간을 의미합니다. 충돌하는 두 마음은 홍콩인의 서로 다른 마음입니다. 중국으로의 반환을 찬성하는 쪽과 영국의 통치를 지지하는 쪽 말이죠. 당시 이런 의견 충돌로 인해서 홍콩 사회는 불안정했습니다. 첸 부인이 자주 읽는 신문, 신문기자라는 차우의 직업은 모두 정세를 확인하고 대응하려는 불안한 심리를 보여줍니다. 또한, 차우는 무협 소설을 즐겨 읽는다고 말합니다. 무협 소설을 매개로 둘은 친해지죠. 이후 첸 부인과의 밀회에서 차우는 글을 쓰고, 첸 부인은 글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합니다. 무협 소설은 중국을 상징합니다. 무협은 중국을 대표하는 장르입니다. 뿐만 아니라, 차우가 집필을 목적으로 잡은 모텔 방의 호수는 2046호인데요. 2046은 홍콩이 체제를 인정받는 마지막 해입니다. 모텔방이 주로 붉은색 계열로 이루어진 점과 2046호, 무협소설은 곧 중국 체제 아래로 복속될 홍콩의 상황을 암시합니다.


 왕가위 감독은 <중경삼림>, <화양연화>, <타락천사> 등의 작품들을 통해 당시 홍콩이 처한 상황을 묘사하였습니다. 세기말의 분위기와 반환으로 인한 혼란, 불안감 등을 적절히 혼합하여 예술적인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감독은 단순히 홍콩 반환 반대 혹은 찬성 입장을 고수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상징과 암시를 통해서 양측의 입장을 모두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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