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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해석가 May 01. 2023

저수지의 개들

남자들의 허세

시간이 흐르며 재평가받는 영화가 있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주제나 연출이나 정서와 맞지 않는 경우가 원인입니다. 필모그래피가 거듭될수록 감독 특유의 색채가 살아있다면 다시 평가되기도 하는데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신인 감독이었을 때, 신경질적으로 폭발하는 폭력, 유혈이 낭자한 장면들, 절대악을 향한 잔혹한 살인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필모그래피를 이어오며 “타란티노스러운” 영화들을 만들었습니다. 그 기초에는 <저수지의 개들>이 있습니다.

 흔히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를 해석한다고 말하면 대다수는 “오락 영화에 무슨 철학이 있고 교훈이 있냐”라고 반응합니다. <저수지의 개들>을 비롯한 타란티노 영화들은 오락영화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한 남자가 차 뒤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갑니다. 복부에 총상을 입어 흰색의 카시트를 붉게 물들입니다. 운전 중인 미스터 화이트는 안심시키지만 확신은 없습니다. 그들은 간신히 접선지에 도착했습니다. 미스터 화이트와 총상을 입은 미스터 오렌지를 포함한 6명의 일당은 보석상에서 다이아몬드를 터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밀고로 경찰들이 보석상 앞에서 일당을 기다렸고 급습을 당했습니다. 총질을 하며 수사망을 겨우 빠져나온 미스터 핑크와 미스터 블론드도 접선지에 도착합니다. 일당 중 배신자가 있다는 확신에 그들은 서로를 향한 의심을 시작합니다.


 <저수지의 개들>의 시작 장면은 신선합니다. 8명의 인물이 카페에 둘러앉아 의미 없는 대화를 이어나갑니다. 영화 시간으로는 15분, 실제 시간으로는 8분가량 반복되는 이야기에 관객은 당황합니다. 미스터 브라운은 마돈나의 “Like a Virgin”을 남성의 성기(Dick)를 탐하는 여자의 이야기로 해석합니다. 동시에 리더인 조는 전화번호부 속 이름을 되뇝니다. 미스터 핑크는 팁을 주지 않는 자신의 지론을 이야기하죠. 세 이야기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장광설은 두 가지 효과가 있습니다. 각 캐릭터를 구축하고 후에 일어날 일의 복선입니다.


 <저수지의 개들>을 통틀어 “Dick”이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먼저, 위에서 언급한 장광설에서 등장합니다. 둘째, 미스터 블론드가 출소 후 조를 방문할 때, 에디와 블론드의 대화 속에 여러 번 등장합니다. 또한, 에디와 화이트, 핑크와 오렌지가 함께한 차 안에서 에디는 “Lady E”의 이야기를 합니다. Lady E는 남자의 배에 그의 성기를 접착제로 붙였다고 합니다.

 “Dick”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남성의 성기를 뜻하는 은어입니다. 두 번째는 ‘비전문적인 짓을 하다’라는 뜻입니다. <저수지의 개들>에는 남자들만 등장합니다. 초반부에 정장을 빼입고 멋있게 걸어가는 장면과는 완전히 대비되어 피칠갑에 애걸하고, 결말은 참혹합니다. 영화는 미스터 브라운의 말대로 “Dick(1. 남자, 2. 비전문적인 짓)”으로 가득 찼습니다. 등장인물들을 살펴보도록 하죠.


미스터 화이트와 미스터 오렌지는 닮았습니다. 미스터 화이트는 자신 때문에 미스터 오렌지가 총에 맞았다는 죄책감을 가집니다. 미스터 화이트는 연민과 동료애가 풍부합니다. 죽어가는 오렌지에게 규칙을 어기고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죠. 오렌지는 작전 중에 민간인을 사살했습니다. 잠복 경찰인 그는 시민을 지키지 못할 망정 죽였기에 죄책감을 느낍니다. 화이트와의 도주에서 울부짖은 이유는 비단 복부 통증 때문이 아닙니다. 그를 관통한 죄책감에서 오는 비명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에디가 쏜 총에 맞은 화이트는 오렌지를 끌어안습니다. 이 모습은 피에타와 닮았습니다.

 피에타는 십자가형으로 죽은 예수를 끌어안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으로, ”자비를 베푸소서 “라는 뜻입니다. 오렌지는 무고한 시민을 쏜 죄와 조직에 가담한 죄를 끌어안고 복부에 총상을 입습니다. 화이트는 그런 오렌지를 보며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안심시킵니다. 화이트가 조를 설득하며 “그는 좋은 아이(He’s a good kid)”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Mr. White: Joe, trust me on this. You've made a mistake. He's a good kid. …(중략)… I know this man. He wouldn't do that.

 오렌지는 진실을 이야기해 화이트에게 자비를 요구하고 용서를 바랐습니다. 오렌지를 믿었던 화이트는 배신감에 오렌지를 쏘았고, 자신도 죽음을 맞이합니다.


 미스터 핑크는 “Professional(프로답게)”이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감정적으로 동요하여 총을 뽑는 미스터 화이트와 미스터 블론드, 조와 에디를 향해 프로다움을 유지하라고 말합니다.(“Come on guys! Nobody wants this! We’re supposed to be fucking professionals!”) 규칙을 어기고 이름을 알려주려는 미스터 화이트의 말에 다급하게 말을 막기도 하죠.(“Wait! Wait! Wait! Wait! Don’t tell me your fucking name. I don’t wanna know it.”) 미스터 핑크는 사회적 통용이 아닌 명시된 규칙만을 따르고 프로다움을 중시하는 인물입니다. 캐릭터를 함축한 대목은 바로 팁에 관한 지론입니다.

Mr. Pink: Nah, I don't believe in tips.

…(중략)…

Mr. Pink: I don't tip because society says I have to. All right, if someone deserves a tip, if they really put forth an effort, I'll give them something a little something extra. But this tipping automatically, it's for the birds. As far as I'm concerned, they're just doing their job.

 미스터 핑크는 웨이트리스가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기에 팁을 주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때,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기’라는 말은 ‘프로답지 못했기‘라는 말과 동치입니다. 핑크에게 중요한 덕목은 냉철함과 프로다움입니다. 이를 증명하듯 그는 영화에서 가장 프로다운 인물입니다. 미스터 핑크는 냉철한 이성을 상징합니다.


 미스터 블론드는 폭력성을 상징합니다. 사이코패스 같은 행동을 일삼는 그는 보석상 직원을 쐈습니다. 납치한 경찰에게 귀를 자르는 고문을 하고 기름을 끼얹습니다. 기름에 불을 붙이려는 찰나, 기절해 있던 미스터 오렌지가 총을 쏴서 죽입니다. 폭력적인 미스터 블론드는 폭력적인 결말을 맞습니다.

 미스터 블루와 미스터 브라운은 어떤가요? 힘도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둘은 무능을 상징합니다. 무능한 둘은 무력하게 죽어나갔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볼까요. <저수지의 개들>에는 남자들만 등장합니다. 이 남자들이 한껏 멋지게 빼입었지만, 그 결말은 참혹합니다. 그들은 죄책감, 폭력성, 무능 때문에 일을 그르쳤습니다. 이는 전부 남자들의 허세입니다. 오렌지가 일당 앞에서 자랑스럽게 풀어대는 마약 밀매 이야기는 허세입니다. 서로 오가는 고성, 확실하지 않음에도 총구를 들이미는 모습은 남자들 세계를 상징적으로 제시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살아나간 사람은 ‘프로다운’ 미스터 핑크가 유일합니다. <저수지의 개들>은 남자들의 허세가 일을 망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영화 전반에 걸쳐 동성애에 관한 암시가 자주 등장합니다. 반복되는 “Dick”이라는 말뿐만이 아닙니다. 에디는 출소한 미스터 블론드에게 감옥에서의 동성애에 관한 언급을 합니다. 미스터 블론드가 보이는 가학성, 에디와의 몸싸움은 동성애적인 순간들을 제시합니다. 미스터 핑크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조에게 따집니다. 조는 ”네가 동성애자라서 그렇다 “라고 말합니다. 이때, 블론드는 웃습니다.

 동성애는 강한 남자들의 집단에서 멸시받는 성향 중 하나입니다. 특히, 범죄를 저지르는 ‘저수지의 개들’ 집단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지요. 영화에 알게 모르게 등장하는 동성애 성향은 강한 남자 세계에 편입되고 싶은 마음을 가로막는 장애물입니다. 6명의 남자들은 폭력성과 가학성, 죄책감 등으로 그 장애물을 덮었습니다.

 조금 더 확장하여 제목의 뜻으로 이야기로 마무리하겠습니다. 타란티노 감독은 개봉 당시부터 “도대체 저수지의 개들이 뭐냐? “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감독은 그때마다 “등장인물들이 저수지의 개들이다 “라고 대답합니다. 관객은 애매한 답변이라고 말하지만, 감독은 사실 정답을 말했습니다. ”저수지의 개들 “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허세 가득한 남자들의 겉멋 부린 이름일 뿐입니다. 즉, <저수지의 개들>은 강한 남자 집단에 편입되고 싶어 하는 허세 가득한 자들의 몰락 과정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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