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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해석가 Aug 19. 2021

홍콩 드림

<중경삼림> 해석과 홍콩

 4년 전 방문한 홍콩은 여행지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그저 덥고 습하며 치안이 좋은 동남아의 한 국가에 불과했다. 만약 그때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 <중경삼림>, <2046>을 보고 갔다면 홍콩은 조금 달랐을 것이다.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가 야외의 더운 에스컬레이터가 아닌 페이가 633의 집을 보기 위해 몸을 수그렸던 장소로 기억되고 임청하가 들어갔던 바에서 주크 박스라도 한번 켜보고 나왔을 것이다. 나에게 홍콩은 가장 아쉬움이 많이 남는 여행지이지만, 동시에 그만큼 아름답게 기억되는 여행지이기도 하다.


  <중경삼림>은 홍콩 특유의 분위기와 색깔이 잘 살아있는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이다. 1부와 2부의 등장인물이 교묘히 겹치는 자연스러운 전환이 특징이다. 1부는 경찰 번호 233번 하지무가 4월 1일에 여자 친구 메이로부터 거짓말 같은 이별 통보를 받으며 시작된다. 하지무는 메이의 통보가 거짓말이라고 여기고 한 달 안에 그녀가 돌아오리라 생각한다. 그는 메이를 잊지 않기 위해 유통기한이 5월 1일까지인 파인애플 통조림 캔을 사 모은다. 유통 기한이 다가오자 그는 파인애플 통조림을 한 번에 먹어치우고, 바에 들어가서 처음 만나는 여성과 사랑하리라고 다짐한다. 한편, 마약 거래상인 금발의 여성(임청하)은 인도인들에게 뒤통수를 맞고 살인의 위협을 받는 등 일진이 좋지 않다. 그녀는 잠시 위스키를 마시러 바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하지무를 만났다. 하지무와 하룻밤을 보낸 그녀는 홍콩을 떠나기 전 자신을 고용한 외국인을 죽여서 복수한다. 2부는 663이라고 불리는 경찰(양조위)과 음식점 종업원 페이(왕페이)의 이야기이다. 663은 근무 중 항상 단골 샌드위치 가게를 들린다. 그곳에서 종업원 페이를 만난다. 어느 날, 663의 스튜어디스 애인이 그에게 이별을 통보하며 샌드위치 가게에 편지와 함께 663의 집 열쇠를 맡기고 간다. 페이는 전해주려고 했지만 어쩐 일인지 663은 받지 않는다. 페이는 그날 이후로 663의 집에 무단 침입해서 물건들을 관리하거나 바꾸기 시작한다.


 왕가위 감독은 홍콩 반환과 관련된 주제로 영화를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홍콩의 역사에 대해서 살펴보자. 유럽이 식민지 확장 정책을 펴던 시기, 영국은 중국과 두 차례의 아편전쟁을 벌였고 홍콩을 식민지로 얻는다. 영국은 홍콩을 총 세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서 할양받는데, 각각 구룡반도, 신계지역, 홍콩 섬이다. 홍콩 섬과 구룡반도는 영국의 소유로 만들었다. 그러나 주변 유럽 열강들의 눈치를 본 영국은 신계 지역을 99년 임대 방식으로 받는다. 이후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공산당이 중국의 제1당이 되자, 당시의 조약이 불평등 조약이었다는 근거로 영국에 홍콩 지역 전체에 대한 반환을 요구한다. 1997년 7월 1일, 홍콩은 중국에 반환된다.


 1부에 자주 등장하는 유통기한은 홍콩 반환까지 남은 시간에 대한 상징이다. 하지무가 이별을 선고받은 날짜 4월 1일과 5월 1일 자 파인애플 통조림은 7월 1일이었던 홍콩 반환일에 대한 암시이다. 영국이 떠난 후 불안해하는 홍콩인들의 모습은 메이를 잊지 못하는 하지무로 상징된다. 또한 임청하 배우가 쓰고 있는 금발 가발과 레인 코트는 비가 많이 오는 영국을 상징한다. 후반에 여인이 서양인 고용주를 죽이고 가발을 벗어던지는 모습은 영국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2부에서 페이가 663의 집에 무단 침입해 가구와 인형 등을 바꾸지만 663은 변화를 쉽게 인식하지 못한다. 이 장면에서 전 여자 친구의 물품과 인형 등은 홍콩에 남아있던 영국의 흔적을 상징한다. 페이는 영국의 흔적을 천천히 지우고 대체하는 중국을 상징하며, 변화를 겨우 알아채는 663은 불안정한 홍콩인이다. 1부와 2부에 자주 언급되는 비행기는 홍콩에서 벗어나 국적을 바꾸거나 새로운 나라로 떠날 생각을 한 홍콩인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동시에 "캘리포니아는 별게 없더라고요. 똑같았어요"라는 말을 통해서 체류를 결정한 홍콩인들의 모습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중경삼림>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해석했다. 당시 반환을 앞두고 사람들이 가졌던 불안감과 반환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말이다. <중경삼림> 뿐만 아니라 감독의 다른 영화인 <화양연화>와 <2046> 등의 작품도 이렇게 해석된다. 만약 홍콩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꼭 <중경삼림>을 보고 갔으면 좋겠다. 홍콩이 조금 다르게 보일 것이다. 다시 한번 방문하고 싶은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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