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해석
"나는 전갈이야. 그게 나의 본성이라고." 작자 미상의 우화 <전갈과 개구리>의 마지막 대사입니다. 전갈은 불어난 강을 건너기 위해 개구리에게 등에 태워달라고 부탁합니다. 개구리는 독침으로 자신을 찌르지 않을까 두려워 거절하죠. 전갈은 자신이 찌르면 함께 물에 빠져 죽는다며 안심시킵니다. 강의 절반 가량 건넜을 때, 전갈은 느닷없이 개구리의 등을 찌릅니다. 왜 찔렀냐는 개구리의 질문에 전갈은 위 대사를 말하죠. 이 우화는 사람에게 거부할 수 없는 본성이 있음을 보일 때 인용합니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의 영화 <드라이브>는 <전갈과 개구리> 우화를 적극적으로 차용하죠.
낮에는 스턴트 배우, 랠리 선수,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하지만, 밤에는 범죄자들의 도주로를 확보하는 역할의 드라이버. 그는 이웃 아이린과 그녀의 아들 베네치오와 친해집니다. 드라이버는 베네치오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아이린을 향한 마음을 조금씩 드러냅니다. 그러던 중 아이린의 남편 스탠다드가 출소한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어느 날, 출소한 스탠다드가 지하주차장에서 맞아 쓰러집니다. 드라이버는 아이린과 베네치오를 보호하기 위해 스탠다드의 일에 참여죠. 전당포를 터는 일에 가담한 드라이버는 큰 위험에 빠집니다.
드라이버는 <전갈과 개구리> 우화의 개구리와 전갈 모두에 해당하는 특징을 가집니다. 영화 초반, 드라이버는 개구리의 모습입니다. 섀넌의 부탁을 아무런 조건 없이 수용하고, 수리점에서 싼 값에 일하죠. 스턴트 배우로 활동하는 장면에서 개구리로서의 모습이 강조됩니다. 스턴트 촬영 전, 드라이버는 사고가 발생해도 제작사는 책임이 없다는 서약서를 작성합니다. 이때, 드라이버는 한 치의 망설임 없죠. 섀넌이 시킨 일을 묵묵히 처리하는 드라이버는 개구리와 닮았습니다. 그러나 드라이버가 아이린을 보호하기 위한 엘리베이터 싸움 장면에서 전갈 본성이 드러납니다. 사실 영화는 그의 본성을 넌지시 제시합니다. 그가 입고 있는 옷을 통해 말이죠. 아이린과 베네치오를 만날 때는 파란색 옷을 입습니다. 파란색 옷은 순진한 개구리를 상징합니다. 반면, 본성을 드러내는 순간에는 전갈 블루종을 입습니다.
영화 중반, 베네치오와 드라이버는 상어 애니메이션을 함께 봅니다. 드라이버는 베네치오에게 만화에 나오는 상어들이 나쁘냐고 물어봅니다.
Driver: (상어 만화를 보며) Is he a bad guy?
Benicio: Yeah.
Driver: How can you tell?
Benicio: Because he's a shark.
Driver: There's no good sharks?
베네치오는 상어들이 상어이기 때문에 나쁘다고 말합니다. 이때, 상어는 전갈과 같은 의미로 본성을 상징합니다. 이 대화 이후 그는 자신의 상어로서, 아니 전갈로서의 본성을 아이린에게 보이고자 했습니다. 이 장면에서 드라이버는 파란색 옷이 아닌 전갈 옷을 입죠. 그러나 본성을 보여주려던 순간, 아이린은 남편 스탠다드의 출소 소식을 알립니다. 기회를 놓친 드라이버는 곁에서 아이린을 도우리라 단념합니다. 사실 자신의 본성을 아이린에게 보여주려고 여러 번 시도합니다. 그가 물고 있는 이쑤시개는 전갈의 독침을 상징합니다. 또한, 드라이버는 자신의 전갈 블루종을 아이린에게 건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린은 본성을 알아채지 못하죠.
영화에는 포츈쿠키에 대한 암시가 두 번 등장한다. 먼저, 로스가 니노의 피자가게에서 부하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로스는 젓가락과 포춘쿠키를 가져오라고 했지만, 젓가락만 가져올 뿐 포춘 쿠키는 없다. 영화 마지막, 로스와 드라이버가 대면한 자리에서 식탁 위에 포춘쿠키가 쌓여있다. 포춘 쿠키는 미국에서 만들어낸 중국식 과자이다. 겉은 월병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안에는 하루의 운을 점칠 수 있는 글귀가 들어있다. 사람들이 포츈 쿠키를 먹는 이유는 과자 때문이 아닌, 운을 점쳐보기 위함이다. 즉, 포춘 쿠키의 본성은 쿠키가 아닌 운(fortune)이다. 포춘 쿠키는 본성을 숨긴 로스를 상징한다. 영화 초반, 로스가 부탁한 포춘 쿠키가 나오지 않은 이유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임을 보이지 않기 위한 장치이다. 로스도 처음에는 섀넌에게 휘둘리는 개구리인 척했음에 주목하자.
로스는 전당포 습격 사건 이후 전갈의 본성을 드러냅니다. 섀넌과 드라이버를 공격할 때 주로 사용한 칼은 드라이버의 이쑤시개와 같이 전갈의 독침을 의미하죠. 로스는 섀넌을 독침으로 찔렀습니다. 전갈인 척하던 섀넌은 개구리였고, 믿고 따르던 로스에게 공격당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전갈과 전갈의 싸움입니다. 로스가 칼로 드라이버를 찌르고, 드라이버도 로스를 찔렀죠. 로스를 쓰러뜨린 드라이버는 어디로 향할까요? 아마 아이린의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장소로 예상됩니다. 아이린을 보호하고, 추적을 따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죠.
다시 영화의 초반으로 돌아갑시다. <드라이브>는 지속적으로 드라이버와 아이린의 결말이 비극임을 암시합니다. 바로 색채 대비를 통해서 말이죠. 마트에서 아이린의 차가 망가지자, 드라이버는 아이린을 돕습니다. 아이린의 집에 들어간 드라이버는 항상 파란 벽 앞에, 아이린은 빨간 벽 앞에만 서 있죠. 그들의 옷 또한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대비됩니다. 곧 대화를 통해서 사이가 가까워지자, 벽에 걸린 빨간색 장미 그림이 파란색 벽지에 개입합니다. 그러나 색깔은 섞이지 못합니다. 다른 날, 아이린의 집을 찾았을 때, 드라이버는 창문을 바라봅니다. 이때, 아이린은 벽을 경계로 선을 넘지 않습니다. 여전히 남자는 파란색 배경에, 여자는 빨간색 배경에 서 있습니다. 드라이버는 어쩌면 첫 만남부터 이어질 수 없음을 직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