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로 뜯어진 날개를 봉합하려던 이카루스의 처연한 추락.
술 좋아하시나요? 술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습니다. 최초의 술은 과실주로 추정됩니다. 과실이나 벌꿀과 같은 당류에 공기 중의 효모가 만나 자연적으로 발효한 형태죠. 원숭이가 저장해둔 과실이 우연히 발효되고 맛이 좋아 인간이 계속 만들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어나더 라운드>는 술냄새가 풀풀 풍기는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하는 작품입니다. 감독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그런지 여운이 오래 남습니다.
마르틴과 그의 친구들은 학교 선생님입니다. 그러나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열정을 잃은 지 오래이죠. 마르틴은 학생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무시받습니다. 니콜라이는 아이 셋을 키우느라 정신이 없고, 톰뮈는 홀몸이죠. 니콜라이는 생일날, 노르웨이의 철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핀 스코르데루의 이론을 제안합니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5‰이 부족하다는 이론입니다. 열정을 잃었던 마르틴은 해당 이론을 시험해보고 변화가 있다는 긍정적인 결과를 얻습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효과를 봅니다. 수업에서도 자신감이 있고, 가족들과의 관계도 좋아집니다. 그러나 알코올 농도가 과도해지는 순간부터는 상황이 역전됩니다.
마르틴의 친구들은 결핍을 가집니다. 마르틴의 아내는 야간 근무로 자주 만나지도 못하고, 아이들은 마르틴을 없는 사람 취급합니다. 학생들은 마르틴의 강의가 별로라며 클레임을 넣습니다. 톰뮈는 변변한 가족이 없어 혼자 살죠. 니콜라이는 아이 셋을 키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어나더 라운드>에는 ‘재즈’에 대한 언급이 여럿 나옵니다. 마르틴은 재즈 발레를 취미이자 특기로 가집니다. 또한, 알코올의 점화 실험에서 그들은 ‘세저랙트’라는 칵테일을 만들어 먹습니다. 세저랙트는 미국의 재즈 피아니스트들이 많이 마신 술입니다. 그렇다면 왜 재즈일까요?
재즈의 기원을 살펴봅시다. 재즈를 알기 위해서는 블루스를 알아야 합니다. 블루스는 18세기 흑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강제 이주하며 탄생합니다. 흑인의 소울과 서양 가스펠이 결합된 음악입니다. 블루스는 흑인의 한과 우울을 기본 정서로 삼습니다. 이때, 블루스와의 형제 장르로 등장한 게 재즈입니다. 그렇기에 재즈 또한 우울을 기반으로 합니다. 마르틴과 친구들은 우울합니다. 우울의 원인은 바로 ‘결핍’이죠.
친구들이 술에 끌린 이유는 알코올이 그들의 결핍을 채울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알코올은 임시방편에 불과합니다. 결핍이라는 오랜 시간 지속되어 온 거대한 상처의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적당한 알코올은 효과가 있지만, 그 또한 본질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그저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죠. 알코올을 마시면서 현실에서 멀어지려고 했으나 점점 가까워집니다. 그들은 ‘점화의 순간(가장 취한 순간)’에 현실에 맞닿았습니다.
그렇기에 마지막 마르틴의 춤은 처연하기 그지없습니다. 춤은 모든 것을 잃은, 그러나 잃고 싶지 않은 자의 춤입니다. 모두가 신나는 졸업 파티의 순간에, 친한 친구의 장례식, 검은 장례복을 입고 재즈 댄스를 추는 장면은 영화의 주제를 부각합니다.
<어나더 라운드>는 호수와 술을 교차로 제시합니다. 마르틴은 가족들과 함께 호수로 여행합니다. 또한, 생물 대구를 잡기 위해 호수로 뛰어들죠. 호수는 정화의 상징입니다. 적당량의 술을 마셨을 때 호수는 아름답습니다. 가족들과 보내기 좋은 공간이죠. 그러나 과하게 마셨을 때는 모두를 집어삼키는 공간입니다. 영화는 톰뮈와 마르틴의 호수를 각각 제시합니다.
톰뮈는 요트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우직하고 안정적이지만 느립니다. 톰뮈는 호수에서 자살합니다. 마르틴과 친구들이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킬 염려에 실험을 중단했을 때, 톰뮈는 술을 끊지 못합니다. 마르틴이 돌보러 와 준 순간에도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낼 정도로 알코올 중독이 되었죠. 톰뮈는 영화 초반, 수영을 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술에 거나하게 취해 보트를 타러 갔을 때 톰뮈는 원리 원칙을 강조하며 구명조끼를 입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톰뮈가 마르틴을 보낸 이후 호수로 향하여 구명조끼를 내팽개칩니다. 연락하자는 마르틴의 말에는 답을 하지 않습니다. 톰뮈는 마르틴에게 자신처럼 되지 말라고 합니다. “이런 삶은 가치가 없어.”라고 말하고 자살합니다. 호수는 톰뮈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습니다.
반면 마르틴은 카누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카누는 쉽게 흔들립니다. 그러나 빠르게 나아가죠. 마르틴이 재즈 댄스를 추다가 호수로 뛰어드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호수로 뛰어드는 마르틴이 하늘을 나는 듯한 모습으로 말이죠. 알코올을 통한 완전한 비상을 보여줍니다. 몇 초 뒤의 미래는 분명합니다. 이카루스처럼 추락하여 호수에 빠질 겁니다. 모든 것을 잃은 마르틴, 그러나 그 순간 아내에게서 희망의 여지를 발견합니다. 마지막으로 술을 마신 그는 호수로 뛰어들어 정화합니다. 카누 같은 삶은 마르틴이 다시 뭍으로 올라와 살아갈 것임을 암시합니다.
마르틴과 창문을 같이 잡는 장면이 여럿 등장합니다. 이때마다 마르틴은 창틀에 겹쳐 보입니다. 자유롭고 싶어 하는 마르틴은 술을 마시면 마실 수록 틀 안에 갇히는 구도입니다. 점차 창틀 안으로 들어옵니다. 톰뮈의 장례식 날,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마르틴은 아내의 연락을 받고 식당 문 앞으로 갑니다. 이때 완전히 틀 안에 갇힙니다. 해당 모습은 마치 관과도 같습니다. 관에 갇힌 톰뮈와 마르틴의 모습을 병렬적으로 제시하죠.
<어나더 라운드>는 1시간 10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색깔이 바뀝니다. 술에 대한 사랑을 제시하다가 술의 부정적인 면이 강조되죠.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은 원래 해당 영화를 술 예찬 영화로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촬영을 시작한 지 4일째, 빈터베르그는 자신의 딸 ‘이다(Ida)’를 교통사고로 잃습니다. 빈터베르그는 촬영을 중단하고, 심지어 삶도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다잡고 영화의 주제를 바꿉니다. 술과 삶을 연계하였죠.
(The story was originally "A celebration of alcohol based on the thesis that world history would have been different without alcohol", and according to Vinterberg, it was "a much angrier movie". However, four days into filming, Ida was killed in a car accident. Following the tragedy, Vinterberg stated that he considered to stop making the film, and even considered to "stop living". However, he eventually decided to rework the script to become more life-affirming. "It should not just be about drinking. It was about being awakened to life, " stated Vinterberg.)
다양한 술을 마시는 걸 좋아하고,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하기에 <어나더 라운드>는 금상첨화였습니다. 빈터베르그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그 여운도 오래 남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던 이카루스의 처연한 추락, <어나더 라운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