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치드렁크러브> 해석
I don't know.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는 주인공 배리의 사랑이야기를 다룬다.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위 대사는 배리가 많이 하는 말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왜 어릴 때 하필 망치로 개 집을 부순 거야?", "왜 피아노를 길가에서 훔친 거야?", "왜 사람을 만나지 않는 거야?" 등의 수많은 질문을 한다. 이런 질문들은 배리를 감정적으로 몰리게 만든다. 그럴 때마다 배리는 "I don't know"로 일관한다. 배리는 무엇을 모를까?
배리는 동료 랜스에게 길가에서 훔쳐온 피아노를 보여준다. 랜스는 해당 악기가 피아노가 아니라고 한다. 이후 이 악기의 이름은 계속 바뀐다. 배리는 피아노, 레나는 오르간이라고 부른다. 비로소 랜스가 풍금이라고 부르며 이름을 찾는다. 풍금은 무엇을 의미할까? 풍금은 사랑을 상징한다. 엄연히 말하면 배리의 사랑을 상징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또한, 단번에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갑작스러운 사고와 배달된 풍금은 갑자기 나타나는 사랑과 닮았다. 피아노, 오르간 등 풍금을 지칭하는 다양한 이름은 단번에 알아차리기 힘든 사랑의 특징을 보여준다. 배리는 "I don't know"라는 말을 영화 중후반까지 반복한다. 레나와의 사랑 이후 배리는 해당 대사를 하지 않는다. 그가 모르겠다고 말하는 대상은 바로 사랑이다. 영화의 풍금에서 주목할 점은 고장이다. 배리의 풍금은 공기 저장기에 문제가 있다. 배리는 테이프로 수리한다. 고정은 되었지만, 풀무질을 할 때마다 테이프 접히는 잡음이 들린다. 잡음은 배리의 미성숙함을 상징한다.
배리는 항상 갑작스럽고 신경질적으로 감정을 분출한다. 누나들의 전화와 간섭에 지친 그는 갑자기 창문을 깬다. 치과 의사인 매제(여동생의 남편)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다가 눈물을 보인다. 어렸을 때 망치로 개 집을 부순 행위, 식당 화장실을 부수는 행위는 모두 배리의 미성숙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오점이나 허점을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 스스로를 거짓으로 포장하거나 숨긴다. 배리도 마찬가지이다. 스스로의 미성숙이 부끄러웠던 그는 사랑하는 레나에게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은 반복된다. 그러다 하와이에서 레나와 시간을 보낸 후 진실만을 말한다. 폭력배들에게 돈을 뜯기고 폰섹스 업체에 개인 정보를 유출하는 미성숙한 배리. 자신이 사랑하고 지켜야 할 사람이 생기자 성숙해진다. <펀치 드렁크 러브>는 사랑이라는 양분으로 성장하는 배리의 이야기를 담는다.
영화의 제목은 무엇을 의미할까? Punch Drunk는 펀치 드렁크 증후군에서 따온 말이다. 펀치 드렁크 증후군이란, 복싱 선수가 경기 중 머리에 반복적인 충격을 입어 뇌에 손상이 오는 증상이다. 필자는 제목은 두 가지로 해석했다. 첫째는 반복되는 사고 속에서 커져 가는 배리와 레나의 사랑에 대한 암시이다. 배리가 레나를 처음 만날 날,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연락처 교환을 하는 순간에도 직원의 실수로 큰 사고가 났다. 하와이에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폭력배들에게 사고를 당한다. 마치 펀치 드렁크 증후군처럼 반복적인 사고의 충격을 입고 사랑을 느끼는 둘을 상징하는 제목이다. 둘째는 사랑 그 자체에 대한 표현이다. 사랑의 감정은 독특하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한 대 맞은 사람(Punch) 같기도, 술에 취한 사람(Drunk) 같기도 하다. 펀치 드렁크 러브는 사랑에 빠진 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제목이다.
배리는 전화에 시달린다. 전화는 오프닝부터 엔딩 10분 전까지 끊임없이 울린다. 영화 초반에 배리는 전화를 주도하지 못한다. 헬시 초이스 사와의 전화, 누나들의 확인 전화, 폰섹스 위협 전화 등은 상대가 주도권을 가진다. 그러나 하와이에서 레나와의 사랑 이후 주도권이 넘어온다. 매트리스 맨의 소재를 파악하고, 레나에게 전화를 걸며, 폰섹스 업체에 선전포고를 한다. 특히 매트리스 맨을 만나기 위해 LA에서 유타까지 유선 전화기를 들고 가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레나와의 사랑 이후 달라진 배리. 하지만 매트리스 맨과의 전화는 예외이다. 매트리스 맨은 "Shut up!"을 반복하며 전화의 주도권을 빼앗는다. 과거였다면 배리는 전화를 끊고 분에 못 이겨 물건을 부쉈으리라. 사랑의 힘을 가진 배리는 전화를 들고 매트리스 맨을 찾아간다. 이때, 들고 있는 전화는 그의 단계적 성장을 상징한다. 유선 전화는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다. 비대면의 상황에서 배리는 당당함을 갖추는 데 성공했다. 이제 대면해서도 당당함을 가져야 한다. 매트리스 맨을 찾아간 배리는 사랑의 힘으로 말싸움에서 이긴다. 이후 전화기를 직원에게 넘긴다. 이를 통해 배리는 완전한 성숙에 도달했으며, 과거와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색감이 있다. 감독은 색감으로 그들의 감정을 과장한다. 배리가 주로 입는 파란색은 내면의 외로움과 미성숙을 가리기 위한 과장이다. 평소 자신의 주장과 개성이 없는 배리는 밋밋한 흰색의 아파트에서 산다. 집은 내면을 상징한다. 배리는 집에서 강렬한 파란색 옷을 벗고 흰색과 회색 등 무채색의 옷을 입는다. 붉은색으로 대표되는 레나도 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강렬한 붉은색은 마음속의 상처와 외로움을 감추기 위한 과장이다. 레나의 집도 흰색 계열의 인테리어를 가지고 있다. 검은색 소파는 그녀의 아픔을 상징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지만, 배리는 레나와 검은색 소파에 앉아서 아픔을 나누었다. 둘은 가까워졌고, 사랑을 나누었다. 영화 후반부, 문틈 사이로 보이는 레나의 집은 빛으로 가득 차 있다. 교묘하게 검은색 소파는 보이지 않고, 집안 가득 무지개가 보인다. 배리를 만나고 치유와 사랑으로 가득 찬 그녀의 내면을 보여준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참으로 독특하다. 사고처럼 갑작스럽게 다가오고 알 수 없는 힘을 준다. 또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한다. <펀치 드렁크 러브>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대신 데우스 엑스 러브를 사용했다. 사랑의 힘으로 꼬인 모든 사건을 해결한다. 이는 영화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에는 초월적인 힘이 있다. 몽글몽글한 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를 보길 바란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 매우 갑작스럽게 등장하여 간편하게 극 중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연출 요소. 주로 신의 형태를 하고 있다. 영화와 소설에서 주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