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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해석가 Oct 17. 2021

사랑의 이항 공식.

<더 랍스터> 해석

 "Immature love says, I love you because I need you, mature love says, I need you because I love you."
 "미성숙한 사랑은 '당신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고, 성숙한 사랑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한다." 

위 말은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이 했습니다. <더 랍스터>를 보신 분들은 영화와 저 말이 정확하게 부합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기괴한 설정 아래에서 발생하는 부조리극의 대가입니다. <킬링 디어>, <송곳니> 등이 대표적인데요. 오늘 다룰 <더 랍스터>에서도 사랑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녹였습니다. 조금은 독특한 시각의 로맨스 장르를 보고 싶으시다면, 이 영화를 추천드립니다.


 <더 랍스터>는 이항(移項)적입니다. 영화에 나온 설정들은 모두 이항대립의 관계에 있죠. 이항 대립이란, 의미적으로 대립되는 한 쌍의 개념을 의미합니다. 호텔을 포함한 도시는 짝을 위한 공간입니다. 호텔 투숙객들은 일정 시간 안에 짝을 만나지 못하면 동물로 변하는 벌을 받습니다. 지내는 동안 홀로 생활하는 삶의 위험성을 세뇌받으며, 짝을 찾도록 자극합니다. 준비된 활동들은 대부분 상대와 함께합니다. 반드시 짝을 지어서 춤을 추고, 시간을 보냅니다. 자위는 엄격히 금지되는 반면 섹스는 강조됩니다. 186호에 묵고 있는 로버트의 경우 상습적인 자위행위로 손을 토스트기에 집어넣는 벌을 받죠. 호텔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난 사람들은 도시로 나가서 호텔에서의 삶을 이어나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는 호텔의 성질을 상속하는 확장된 장소입니다. 


 반면 자연은 외톨이들의 공간입니다. 도시에서 낙오된 자들과 도시의 규칙에 반대하는 자들, 동물들이 모였죠. 숲으로 상징되는 자연은 철저히 개인을 위한 공간입니다. 호텔과는 달리 개인 기기로 음악을 듣고 혼자 춤을 춥니다. 생존도 스스로의 몫으로 덫에 걸려도 아무도 돕지 않습니다. 이런 외톨이들의 공간에서 섹스는 엄격히 금지됩니다. 하지만 자위는 가능하죠. 사실 섹스는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행위입니다. 자위가 오히려 독특한 행위이죠. <더 랍스터>에서는 자연에서는 독특한 자위라는 행위가, 인공적인 도시에서는 자연스러운 섹스가 강조되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자연은 극단적으로 관계 맺음을 지양하는 장소입니다.


 이렇듯 <더 랍스터>는 세계를 이항적으로 구분 짓습니다. 도시가 양(+)이라면, 자연은 음(-)이죠. 도시는 현실 사회에서 강조되는 규칙을 의미합니다. 이때, 강조되는 규칙이란 결혼이라는 제도입니다. 규칙과 제도의 기준은 이항적입니다. 기준에 부합하거나(A) 기준에 부합하지 않거나(~A)죠. 한 국가에서 현재 기혼자를 위한 제도를 만든다고 가정해 봅시다. 제도에 적용되는 사람들은 현재 기혼 상태에 있는 사람(A)입니다. 적용되지 않는 사람은 기혼 상태가 아닌 자(~A)들이죠. 감독은 각각의 기준을 극단적으로 설정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데이비드는 사랑과 관계가 강조되는 호텔에서는 순수하지 않고 정치적인 사랑을 합니다. 사랑이 철저히 부정되는 외톨이 집단에서는 순수한 사랑을 만나죠. 어쩌면 사랑은 이데올로기와 가장 반대되는 개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우(對偶)문을 아시나요? 대우문이란, 하나의 명제에 대하여 전건과 후건을 모두 부정하고 순서를 바꾼 명제입니다. 항상 참인 명제의 대우문은 항상 참입니다. 잠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생물은 죽는다'의 대우 문은 '죽지 않으면 생물이 아니다'입니다. 둘 다 항상 참이죠. 대우문을 이야기한 이유는 <더 랍스터>의 징벌이 대우 문을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호텔을 벗어나지 못한 투숙객들과 사냥으로 잡혀온 외톨이들은 동물로 변합니다. 왜 하필 동물로 변하는 징벌일까요? 이 벌은 한 가지 명제에서 출발합니다. 바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명제이죠. 해당 명제의 대우문은 '사회적 동물이 아니면 인간이 아니다'입니다. 호텔에서는 사회적 관계가 첫 번째 요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관계를 맺지 못하는 자들은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로 변합니다. 이렇게 동물로 변한 사람들은 외톨이들과 함께 자연에서 살아갑니다. 데이비드가 외톨이 집단으로 갔을 때, 배경에는 수많은 동물들이 보입니다. 이들은 모두 호텔에서 사냥되어 변신된 외톨이들이거나, 호텔에서 방출된 사람들입니다. 외톨이와 동물들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데이비드는 영화 내내 등 통증을 호소합니다. 시간에 맞춰서 등에 연고를 발라야 합니다. 하지만 호텔에서와 자연에서 모두 손이 닿지 않는 부분은 바르지 못합니다. 등에 연고를 바르는 행위는 그가 추구하는 사랑을 정의합니다. 사랑은 정치적 관계가 아닙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묘사된 사랑은 데이비드의 경우를 제외하곤 모두 정치적입니다. 존은 동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 코피를 잘 흘리는 척하여 짝을 찾았습니다. 데이비드도 같은 이유로 냉혈의 여성과 관계를 맺죠. 이런 관계에서 사랑은 거세되었습니다. 사랑이란, 사회의 규제를 받지 않기 위해 정치적으로 맺는 관계가 아닙니다. 거창한 이유로 사랑을 시작하지 않죠. 그저 닿지 않는 위치에 연고를 발라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면 됩니다.


 자, 그러면 <더 랍스터>의 결말을 살펴보도록 하죠. 영화에서 묘사하는 사랑의 과정은 획일적입니다. 단순히 공통점을 통해서 사랑이 이루어지죠. 존이 일부러 코피를 낸 이유, 데이비드가 냉혈한처럼 보인 이유는 공통점을 통해 짝을 맺기 위함입니다. 그 공통점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을 때, 사랑은 끝납니다. 데이비드는 근시의 여성이 눈을 멀기 전까지는 윈스턴 처칠이 말한 성숙한 사랑을 했습니다. 그러나 눈을 먼 이후에는 미성숙한 사랑을 합니다. 데이비드는 보스가 무덤을 파고 몸을 덮으라는 지시를 받은 순간 벌을 받을 것을 예상합니다. 데이비드는 생존 욕구가 강한 사람입니다. 그가 랍스터가 되고 싶다 말한 이유를 살펴보면 알 수 있죠.(랍스터는 100년 넘게 살고, 귀족과 같이 푸른 피를 가졌으며 평생 번식한다.) 생존을 위해 상대를 죽이고, 보스를 무덤에 묻을 정도로 강합니다. 그는 협박을 받은 이후 도주할 계획을 세웁니다. 혼자서는 도시로 갈 수 없으니 근시의 여성과 함께 말이죠. 이때부터 상대는 사랑의 대상이 아닌 수단에 불과합니다. 이는 근시의 여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스와 함께 눈 수술을 받은 이후 그녀는 보스에게 데이비드의 눈을 멀게 할 수도 있었다고 호소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데이비드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손익을 계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데이비드가 눈을 찌르지 않고 근시의 여성에게 눈이 멀었다고 거짓말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상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더 랍스터>에서 모든 사랑은 거짓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코피를 잘 흘리는 커플도, 냉혈의 커플도, 매니저와 가수 커플도, 치과의사와 메이드 커플 모두 말이죠. 데이비드도 이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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