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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해석가 May 10. 2023

플로리다 프로젝트

무지개의 양 끝단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입니다. 사람들은 밝은 면만 보려고 합니다. 어두운 면은 불쾌감을 주니까요. 어둠을 보지 않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빛의 밝기를 키우는 방법입니다. 빛의 밝기가 강하면 어둠이 보이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어둠을 외면하는 방법입니다. 어둠이 그곳에 있음에도 바라보지 않으면 없다고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 두 방법은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는 본질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션 베이커 감독은 이런 사회의 어두운 면을 가감 없이 드러냅니다. 동정의 시선을 배제하고 소수자와 약자의 삶에 녹아듭니다. 디즈니랜드 주변의 가난을 다룬 <플로리다 프로젝트>도 그렇고, 길거리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다룬 <탠저린>도 그렇습니다.


 6살의 무니는 22살의 어린 엄마 헤일리와 디즈니랜드 근처의 매직 캐슬 모텔에서 살아갑니다. 시설이 변변치 않은 매직 캐슬에서 무니와 그녀의 친구 스쿠티는 그들만의 놀이를 합니다. 차를 향해 침 멀리 뱉기 놀이도 하고, 관광객에게 구걸하여 아이스크림을 얻어먹기도 합니다. 어느 날, 매직 캐슬 근처의 또 다른 모텔 퓨처 랜드에 또래 잰시가 이사옵니다. 잰시는 무리에 금세 스며듭니다. 셋은 어느 날, 폐가에서 놀던 중 불을 지릅니다. 함구하기로 했지만 스쿠티의 부자연스러운 행동에 엄마이자 헤일리의 친구인 애슐리가 알게 되었습니다. 애슐리는 헤일리, 무니와 멀어지기로 합니다. 식사를 구해다 주던 애슐리가 떠나자 헤일리는 빠듯한 비용을 감당하기가 힘들어집니다. 방세를 내기 위해 최후의 수단을 사용합니다.


 제목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1960년대, 플로리다 주의 디즈니랜드 건설 사업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동시에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집 없는 사람들에게 보조금을 주는 사업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무니와 헤일리가 살아가는 매직 캐슬은 디즈니의 상징적인 성(城)의 이름입니다. 성의 상징색인 보라색으로 모텔의 외벽을 칠했습니다. 영화는 디즈니 랜드와 매직 캐슬을 의도적으로 대비합니다. 디즈니 랜드는 꿈과 환상, 마법을 의미하지만, 매직 캐슬은 현실과 가난을 의미합니다. 영화 마지막에서 무니가 매직 캐슬 모텔에서 벗어나 디즈니 랜드 속 매직 캐슬로 달려가는 장면은 상징적입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아이와 어른의 세계를 병렬적으로 제시합니다. 무니와 스쿠티의 이야기로 시작한 영화는 이내 헤일리와 애슐리의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애슐리와 헤일리가 멀어진 이후에는 무니와 잰시의 이야기로 전개됩니다. 중반까지 아이들의 세계와 어른들의 세계는 유사하게 흐릅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말썽을 피우고 놀이를 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영화에서 어른들이 피는 담배와 아이들이 먹는 아이스크림은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나 중반 이후, 두 세계의 가장 큰 차이점이 나타납니다. 바로 책임입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행동에 큰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빈 펜션 방화 사건처럼 말입니다. 어른들의 세계는 다릅니다. 매직 캐슬 모텔의 사장은 매니저 보비에게 모든 관리 책임을 넘겼습니다. 궂은일은 모두 보비에게 넘기고 공은 사장이 챙깁니다. 이 모습은 어른들의 세계를 단적으로 제시하는 예시입니다.

 헤일리와 무니, 아이와 어른의 세계가 충돌하는 순간에는 그 책임의 의미가 더 커집니다. 헤일리가 무니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사랑만이 담겨있지 않습니다. 무거운 책임감 또한 담겨있죠. 한 호텔에서의 최후의 만찬에서 아이답게 말하지 않은 무니를 바라보는 헤일리의 표정은 오묘합니다. 표정에는 자신 때문에 아이가 이토록 거칠게 변했는지에 대한 근심과 더 볼 수 없다는 착잡함, 미안함과 책임감, 사랑이 복합적으로 담겼습니다. 그러나 그도 잠시, 몇 호실인지를 묻는 직원의 질문에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합니다.


 윌리엄 데포가 연기한 보비는 매직 캐슬의 시설물을 관리하고 수리하는 매니저입니다. 그는 색이 벗겨진 벽에 페인트칠을 하고 방 리모델링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무니와 헤일리를 비롯한 투숙객들을 보호합니다. 소아성애자를 내쫓고 나체로 태닝 하는 여인을 제지하기도 하죠. 그러나 동시에 그는 매직 캐슬 101호에 거주하는 투숙객입니다.

 보비의 주된 업무는 수리입니다. 영화에서 보비는 두 가지 기계를 수리하지 못합니다. 바로 얼음 디스펜서와 세탁기입니다. 두 기계는 보비가 가진 문제를 상징합니다. 보비는 아내와 이혼 후 매직 캐슬에서 근근이 살아갑니다. 때때로 아들이 와서 일손을 돕기도 합니다. 아들과 일하던 중 보비는 아내를 향한 모진 말로 상처를 입혔고, 보비를 다시 한번 떠납니다. 얼음 디스펜서는 뜨거운 플로리다의 열기를 식힙니다. 그러나 금세 녹아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얼음은 임시방편을 상징합니다. 순간적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일 뿐, 그 본질을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세탁기의 상징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서 다루겠습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는 시끄러운 헬기 소리가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소리가 잦아집니다. 헬기의 큰 소리에 매직 캐슬의 아이들의 목소리가 묻힙니다. 헬기에는 플로리다에 휴양하러 온 부자들이 타고 있습니다. 헬기 소리는 어둠을 보지 않으려는 자들을 상징합니다. 가난한 자들을 소리에 묻어 바라보지 않은 부자들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확장해서 말하자면, 디즈니랜드라는 거대한 꿈과 희망 뒤에 가려진 약자들의 모습을 제시합니다.


 영화 초반, 무니와 스쿠티는 차를 향해 침을 뱉는 놀이를 합니다. 적발되자, 헤일리는 무니와 스쿠티에게 차를 닦으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모텔의 히스패닉계 직원, 버사는 무니와 스쿠티에게 종이 타월을 건넵니다. 버사는 중반에 전혀 등장하지 않다가 마지막이 되어서야 다시 나옵니다.

 헤일리는 돈을 벌기 위해 무니가 화장실에 있는 동안 성매매를 합니다. 매직 캐슬 모텔 전원은 이 사실을 알게 되고, 헤일리를 피합니다. 다만, 버사만큼은 안아줍니다. 헤일리는 위로를 받습니다.

 수건은 얼룩을 닦고 깨끗이 만드는 용도입니다. 깨끗하고 흰 수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위로입니다. 둘째는 아동국과 같은 즉각적인 해결을 상징합니다. 위에서 다룬 얼음 디스펜서와 같은 의미이죠. 수건을 빨래하는 세탁기는 사회 시스템의 본질적인 해결을 상징합니다. 영화는 끝까지 세탁기를 고치지 못합니다. 고장 난 세탁기는 결국 사회 시스템의 부재를 의미합니다. 다만,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정리해 볼까요. 영화가 끝나고도 여운이 길게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헤일리가 성매매를 한 것은 돈을 벌어 무니를 책임지기 위함입니다. 헤일리는 무니를 사랑합니다. 책임지는 방식이 잘못되었을 뿐 사랑하는 마음은 분명합니다. 아동국은 이런 헤일리의 방식이 건강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분리조치를 합니다. 이성적으로는 옳은 판단일지 모르겠으나, 무니는 행복할까요? 그렇다고 헤일리와 함께 매직 캐슬에서 살게 내버려 둬야 할까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꿈과 환상, 마법으로 가득한 디즈니 랜드 속 진짜 매직 캐슬을 향해 뛰어가는 두 아이의 뒷모습을 통해 물음표를 던집니다. 감독은 이런 식의 연출을 통해 관객이 다시금 곱씹어 볼 수 있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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