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태엽 오렌지> 해석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작품은 항상 충격을 안겨줍니다. 대표적으로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있죠. 1968년 개봉한 영화임에도 완성도와 그래픽, 화면 연출 등이 뛰어나서 SF 영화의 전범(典範;본보기가 될 만한 모범)이자, 아직까지도 수많은 영화의 레퍼런스로 사용됩니다. 오늘 다룰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는 그리 많지 않은 예산으로 촬영했습니다.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처럼 압도적인 스케일이 있거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처럼 정치극을 다루지 않지만 개봉 이후 수많은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충격적인 장면과 철학으로 관객을 놀라게 합니다.
<시계태엽 오렌지>를 이해하려면 먼저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시계태엽 오렌지>는 앤서니 버지스가 쓴 동명의 소설 ⟪시계태엽 오렌지⟫를 바탕으로 합니다. 해당 소설은 1950년대 영국이 배경이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의 청소년들의 비행과 반발을 그렸습니다. 큐브릭 감독은 원작을 각색하여 1960 ~ 1970년대를 바탕으로 그려냅니다. 영화에 표현된 고급 스포츠카 듀랭고 95가 1969년에 출시한 스포츠카임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때의 청소년들은 평화를 외쳤습니다. 특히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대단했죠. 이들은 히피가 되어은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기성세대에 반발합니다. 그러나 점점 평화의 개념은 퇴색되었고, 마약과 섹스가 강조되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평화를 주창하는 단체가 폭력 사건이나 살인을 저지르는 일들도 발생합니다.
<시계태엽 오렌지>는 크게 두 극으로 나뉩니다. 영화가 시작하고 중반까지는 알렉스 일당의 비행을, 이후에는 알렉스가 받는 치료를 중심으로 전개하죠. 알렉스와 일당은 시대를 대표하는 청소년입니다. 코로바 밀크바에서 우유를 마시고, 난폭운전을 하며, 강간과 강도질을 벌입니다. 이들이 마시는 우유에는 마약이 첨가되어있습니다. 알렉스는 우유를 마시고 '정신이 번쩍 들고, 폭력을 맛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라고 표현하죠. 우유는 시대를 상징합니다. 흰색의 우유는 겉보기에는 평화와 사랑을 추구하는 순수한 관념을 의미하죠. 우유에 타는 마약은 당시 사회 문제였던 마약과 섹스, 폭력 관련 문제들을 의미합니다. 영화에서 성적인 암시가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시대적으로 성(性) 문제가 대두되었기 때문입니다. 우유 디스펜서와 테이블, 조형물 등은 여성의 몸 모양입니다. 벽에 그려진 그림들은 하나같이 여성 혹은 남성의 성기나 신체이죠. 조형물이나 사탕도 성기 모양입니다. 이렇듯, 알렉스가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까지 당시 사회적인 문제를 상징과 극대화를 통해 제시합니다. 청소년들은 기성세대의 위선을 비웃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모습을 말이죠.
그러나, 알렉스가 교도소에 들어가면서 영화의 분위기와 주제가 바뀝니다. 이때부터 큐브릭 감독은 인간에게 선택이 거세되었을 때, 과연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연구 단체가 알렉스에게 행하는 실험은 파블로프의 개 실험과 유사합니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은 먹이와 종소리를 연관 짓도록 만드는 반복적인 훈련입니다. 실험자는 개에게 항상 종을 울리고 먹이를 제공합니다. 이 훈련을 반복하다 보면, 종이 울리면 먹이를 먹는다고 인식합니다. 이후에는 종만 울렸을 뿐인데 침을 흘리죠. 마찬가지로, 실험자들은 알렉스에게 구역감이 몰려오는 약을 주입하고 폭력적인 영상들을 보여줍니다. 몸은 자연스럽게 구역감의 원인을 눈앞의 폭력으로 상정합니다. 이 훈련이 반복되면, 알렉스가 폭력을 바라볼 때마다 구역감이 밀려와 폭력을 관철합니다. 주지사와 과학자들은 이를 선(善)이라고 부릅니다. 겉보기엔 상당히 그럴 듯 한 치료입니다. 확실히 교도소에서의 교화보다 효과가 있는 듯하죠. 그러나, 이 치료 방법은 틀렸습니다. 알렉스는 인간으로서의 교화가 아닌, 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실험 단체가 알렉스에게 보여준 두 가지 영상을 살펴봅시다. 첫째, 할리우드에서 만든 듯한 품질의 폭력과 강간을 주제로 한 영상입니다. 해당 영상은 알렉스 일당이 벌이던 범죄 행위와 유사합니다. 둘째, 나치로 대표되는 파시스트 단체의 영상입니다. 전자는 개인의 폭력을, 후자는 국가 단위의 폭력을 다룹니다. 히틀러로 대표되는 나치즘과 무솔리니로 대표되는 파시즘은 강력한 독재자를 필두로 국민의 선택지를 빼앗습니다. 이들은 교육, 문화, 정치로 국민을 세뇌하여 당과 국가의 선택을 우선시하도록 만들었죠. <시계태엽 오렌지>의 주제이자 아이러니는 이 순간 폭발합니다. 학자들이 개인의 폭력 행위를 치료하기 위해 국가 단위의 폭력을 행사합니다. 알렉스를 대상으로 한 실험은 파시스트의 행위와 다르지 않죠. 정확한 정보를 제시하지 않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상을, 부정적인 반응이나 거부를 보이면 벌을 내립니다.
알렉스가 즐겨 듣는 베토벤 9번 교향곡 4악장의 마지막은 환희의 송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환희의 송가는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로, 군주제에 반대하는 내용입니다. 당시 검열이 심각해서 실러의 시 중 한 행이 완전히 사라지는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알렉스가 레코드 샵에서 쇼핑을 하는 장면을 포함에 많은 장면에서 이 음악이 사용되었죠. 프리드리히 실러가 쓴 시가 군주제에 반대하는 내용이라는 점을 미루어 볼 때, 국가 단위의 폭력을 비판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음악을 사용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시계태엽 오렌지>라는 제목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원작 소설에서는 알렉스 일당이 습격하는 작가가 집필하고 있던 책이 '시계태엽 오렌지'입니다. 알렉스를 대상으로 한 루드비코 요법을 비판하는 내용이죠. 원작 소설가 앤서니 버지스에 따르면, 제목은 영국 동부의 은어, "as queer as a clockwork orange"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어구의 알려진 어원은 없으며, 버지스가 스스로 만든 어구로 추측되죠. 제목을 조금 분석해보도록 합시다. Clockwork Orange에서 Orange는 오랑우탄을 의미하는 Orang과 발음이 유사합니다. Clockwork는 시계태엽을 의미하죠. 영화의 제목은 시계태엽, 즉 기계의 힘으로 움직이는 유인원을 의미합니다. 알렉스는 실험을 받고 난 이후 인간보다 유인원에 가까워졌습니다. 하나의 선택지에 거부감을 느껴 반대쪽을 선택해야 하는 기계적인 조작을 받아왔죠. 따라서, 영화의 제목 시계태엽 오렌지는 알렉스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아이러니를 던집니다. 알렉스가 자살 시도를 한 이후, 병원에서는 알렉스를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기 위해 치료를 감행합니다. 알렉스가 프레드릭 장관과 대담 이후 상상을 통해 처음 상태로 돌아왔음을 암시합니다. 줄지어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섹스를 하는 상상이죠. 그는 폭력적이고 성적인 생각을 해도 더 이상 구역감이 올라오지 않습니다. 이 순간 "I was cured, all right!"이라고 말합니다. 큐브릭 감독은 <시계태엽 오렌지>로 폭력을 예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폭력의 위험성을 마지막 장면을 통해 보여줍니다. 알렉스는 이후 어떻게 살아갈까요? 자신을 담갔던 경찰들을 찾아가 보복하고, 노인들을 찾아가 복수할 것입니다. 끝까지 영화의 아이러니가 유지되며 마무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