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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해석가 Jun 02. 2023

아메리칸 사이코

1980년대 미국의 사이코적인 면

 <아메리칸 사이코>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해당 소설은 1990년대 성행했던 여피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여피는 Young Urban Professionals의 앞 글자를 딴 “YUP”과 “Hippie”의 합성어입니다. 주로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사무직 지식 노동자를 의미합니다. 이들은 최신 기술을 먼저 사용하는 Early Adaptor이며, 명품 정장과 고급 명함, 펜트하우스나 고급 아파트에서 사는 특징을 가집니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모티브가 된 조던 벨포드와 미국 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대표적인 여피입니다.


 뉴욕의 고급 아파트에 거주하는 패트릭 베이트만은 아침이면 운동을 하고 수 십 가지의 화장품을 통해 그루밍을 합니다. 패트릭은 월스트리트의 기업 Pierce & Pierce의 부사장입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레스토랑에서 식사 자리를 갖습니다. 어느 날, 패트릭 베이트만을 알버트 핼버스트램으로 알고 있는 폴 앨런이 그에게 다가옵니다. 중요한 ‘피셔 건’을 맡고 있는 그에게 패트릭은 경쟁심을 느낍니다. 폴은 새로운 명함을 만들었다며 패트릭에게 보여줍니다. 패트릭은 예쁜 폴의 명함을 보고 모멸감을 느낍니다. 이런 깔끔한 겉모습과는 달리, 패트릭은 추악한 뒷면을 가집니다. 클럽에 가서 춤을 추다가 화장실에서 마약을 하고, 매춘부를 데리고 집에 와 자아도취적인 섹스를 즐깁니다. 그러던 중 폴 앨런을 죽이게 됩니다.


 <아메리칸 사이코>는 살인의 가상성을 기준으로 두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현실과 망상을 교묘하게 배치했습니다. 어디까지가 망상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모호합니다. 특히, 클럽에서 바텐더에게 욕을 하는 장면은 패트릭의 망상일 수도, 주변 소음으로 듣지 못한 탓일 수도 있습니다. 패트릭의 살인이 망상인 경우를 먼저 다루고, 실제인 경우를 다루겠습니다.

 패트릭 베이트만은 “피어스 앤 피어스”의 부사장이라는 신망 높은 직업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심한 허영심 또한 공존합니다. 패트릭과 동료 부사장들의 식사 자리에서 그들은 다양한 대화를 나눕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화들이 하나같이 수박 겉핥기 식입니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빈 주제들입니다. 스리랑카의 인권 문제를 예로 들어볼까요. 스리랑카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실정인지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자신들의 모습에 자아도취 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직업을 물어보라는 명령은 이런 허영심을 투영하는 질문입니다. 허영심에는 채울 수 없는 헛헛함이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패트릭은 이를 살인이라는 행위로 채웁니다.


 폴 앨런 살인이 망상이라면, 패트릭의 변호사가 런던에서 폴 앨런과 두 번 밥을 먹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살인은 도르시아를 예약하지 못하고, 보다 못한 명함을 가졌으며, 피셔 건을 놓친 패트릭의 상대적 박탈감에 대한 투영입니다. 폴 앨런은 진짜 런던으로 갔고, 살인은 전부 상상이었으며 그에 따라 나머지 살인도 전부 패트릭의 어두운 면을 제시합니다. 크리스티와 클럽의 마약 화장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명품 정장을 빼입은 겉모습과는 달리 타락하고 추악합니다. 크리스티는 패트릭과의 섹스 이후 심하게 고통받았습니다. 직접적인 묘사는 등장하지 않지만 관계가 끝난 뒤의 모습은 처참합니다. 패트릭의 기구들을 이용해 사디스트적인 섹스가 이루어졌음이 짐작됩니다. 사디스트 적이고 나르시시즘적인 섹스 또한 허영심과 살인욕을 투영합니다.

 패트릭 베이트만의 행위가 전부 망상이라면, <아메리칸 사이코>는 다음과 같이 해석됩니다 : 패트릭 베이트만을 통해 말끔하지만 추악한 내면을 가진 미국인의 비판.


 두 번째, 패트릭의 살인이 현실이라고 해석해 봅시다. 물론 노숙자와 크리스티, 노부인과 경찰을 비롯한 수많은 인물의 살인 장면은 지나치게 과장되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과장을 통해 행위 자체를 강조합니다. 패트릭의 변호사는 종전의 해석과 달라집니다. 변호사는 오랜 의뢰인이었던 패트릭을 데이비드라고 부릅니다. 전화를 통해 이야기했지만 상대를 파악하지 못하죠. 해당 장면을 통해 변호사는 폴 앨런을 누군가와 착각했습니다. 킴볼 형사와의 대화에서 폴 앨런이 런던에서 목격되었지만 확실하지 않다는 말의 연장선상입니다.

 또한, 살인이 실제라면 부동상 중개업자의 태도를 살펴볼만합니다. “살인자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장소로 돌아온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개업자는 패트릭에게 유도신문을 통해 살인자임을 파악합니다.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으니 나가라“라는 말은 시체를 처리한 부동산을 함축합니다. 말끔한 펜트하우스에서 살인이 발생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집 값이 떨어질 것은 분명합니다. 최대한 조용히 넘어가려는 모습이죠. 크리스티가 도주하면서 수많은 문을 두드렸지만 이웃 그 누구도 반응하지 않은 장면이 그 증거입니다.

 패트릭 베이트만이 폴 앨런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살인이 사실이라면, 영화의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오로지 효율과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소통이 부재된 미국인의 모습“. 동료들이 누구와 일하는지 관심 없고 자신의 고객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것, 명함을 비교하는 것이 더 중요한 자들의 모습입니다.


 패트릭 베이트만의 집에 걸린 포스터를 보셨나요? 포스터에는 1958년,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작품 <현기증>의 포스터가 걸려있습니다. 패트릭이 크리스티를 전기톱을 들고 추적하는 장면은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과 <현기증>의 오마주입니다. 크리스티가 내려가는 나선형의 계단은 현기증의 계단과 유사합니다. <현기증>의 서스펜스는 꾸며진 사건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존 퍼거슨이 추적하던 여인 매들린은 사실 친구 개빈이 자신의 아내를 죽이기 위한 대역이었습니다. 개빈의 실제 아내가 종탑에서 죽고 난 뒤, 퍼거슨은 매들린과 똑같이 생긴 주디를 만나고, 그녀와 사랑에 빠집니다. 망상적이고 편집증적인 퍼거슨의 모습은 그가 정신 병원에 들어가는 장면을 통해 살필 수 있습니다. <아메리칸 사이코>와의 접점은 여기서 탄생합니다. 주인공 패트릭 베이트만은 망상적이고 편집증적인 성향을 가집니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는 매들린의 모습은 전기톱을 떨어뜨리는 장면을 통해 오마주 되었습니다. 영화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상이한 두 가지 해석에서 변하지 않는 사실을 살펴보겠습니다. 패트릭 베이트만은 모순적인 인물입니다. 패트릭 베이트만의 가학적이고 자아도취적인 모습은 동성애적인 그의 면모를 감추기 위함입니다. 패트릭과 동료들의 대화에는 강하고 남성적인 면모를 강조하는 대화가 많이 등장합니다. 화려한 고급 아파트와 명함, 정장은 추악한 이면을 감추기 위함이죠.

 비서 진이 보는 패트릭의 노트는 그런 모습을 함축합니다. 깔끔한 금장에 미니멀한 디자인의 노트와는 달리 속에는 잔인하고 기괴한 묘사들로 가득합니다. 영화 최후반부, 로널드 레이건의 이란-콘트라 사건에 대한 연설이 등장합니다. “이란-콘트라 사건”은 레이건은 이란에게 무기를 팔고 그 수익으로 니카라과의 반군 콘트라를 지원하다가 걸린 사건입니다. 레이건은 이란-콘트라 사건을 비롯한 인권과 관련된 면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대통령입니다. 해당 장면에서 레이건의 연설에는 화려한 미사여구가 사용되었습니다. 즉, <아메리칸 사이코>는 미국의 대표인 대통령 레이건의 모습을 통해 1980-90년대 당시 미국의 모습을 제시합니다. 정리하자면, 모순적이고 편집증적인 패트릭 베이트만의 모습을 “아메리칸”이라는 국가적 단위로 확장하여 1980년대의 사이코패스적인 모습을 비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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