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을 뒤적이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참 쉽게도 하지만, 막상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젊어 고생할 수밖에 없는 길만을 선택하며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사람에게는 그 짧은 한마디를 누군가에게 쉽게 던지고 싶지 않다. 밤새 뒤척이다 새벽에 일찍 잠에서 깨었다. 어젯밤 아들과 통화후 잠을 이룰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단단한 출석표로 내 머리를 후려쳤던 선생님이 용서가 안 되어 전학시켜 달라고 아부지에게 떼를 써서 어렵게 마무리를 한 경험이 있다. 사람마다 모두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생각도 다름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불쑥 상대방을 무시하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어린이들이라고 인격체를 무시하는 경우도 종종있다. 다행히도 우리 아부지는 회초리를 댈 때면 후려치는 것이 아닌 발을 딛고 올라서게 하는 디딤이에 올라서도록 하고 내가 왜 매를 맞아야 하는지 아부지의 회초리 댓수를 큰 소리를 외치며 맞았었다. 물론, 한창 반항하던 고등학생 시절에는 비온 후 물을 잔뜩 머금은 가시박힌 회초리를 직접 꺽어와 그 회초리로 때려 달라고 차라리 맞아 죽고 싶다고 반항한 적도 있었다. 어쨌거나 우리집에서 회초리는 내가 잘못을 아주 크게 해야만 맞는 하나의 어떤 격식있는 절차와 같았다. 그러나 라파엘 할아버지의 무식한 후려치기로 인해 어린시절의 기억을 온통 까맣게 채웠던 라파엘 아빠의 뒤를 이어 드디어 내 아들 라파엘에게까지 그런 순간이 온 모양이다. 아들이 이틀 동안 소식이 없어서 아들에게 서운하여 언제나 연락하나 보자, 하며 이틀을 기다리다가 전화를 했는데 그 이틀 동안 아들은 혼자 끙끙거리며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나보다. “엄마, 정말 아무에게도 말 하지 말고, 내가 이 말 하자마자 그냥 잊어 버려야 한다, 안 그럼 엄마한테도 이제 아무말도 안 할거야!” 생각이 많은 아들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때마다 나는 마음을 미리 준비하며 추스를 준비를 한다. 학교에서 좋지 않은 일들이 있을 때도 선생님들이 어른답게 행동하지 않다고 생각할 때도 그런 말들을 해 왔었다. 내가 말 한다고 그 사람이 고쳐져? 그냥 5분만 삼키면 모든 것이 끝인데 그냥 참지 뭐. 하는 게 평소 아들의 생각이었다. 아들에게 그런 건 그때그때 대응하라고 엄마도 힘이 되어 줄 테니 어른이어도 잘 못 한건 이야기 해 그래야 어른들도 고쳐 ! 라고 아들에게 조언은 해 주지만, 사실 되돌아보면 나 역시도 그렇게 대응 잘 하는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꽃만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고 공원에서 꽃만보면 엄마에게 꽃을 꺽어 주었던 아들의 세 살>
할아버지집 시골집은 온통 넓은 정원으로 되어 있어서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도로까지 내려가려면 300미터쯤 걸어야 하는데 도로옆 대문쪽은 담벼락이 빼곡한 대나무숲이라 자연스레 담장을 이룬다. 그리고 체리나무, 사과나무, 무화과 나무들이 즐비한 그 길을 지나 걸어 올라오다보면 드디어 집이 보인다. 아마도 그 수많은 나무들 중 한 그루였을 것이다. 코로나로 뭔가 할 수 있는 것들이 한정이 되어있는 답답한 아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돕겠다고 전지가위로 그 나무중 하나를 가지치기 한다며 잘랐을 테고, 할아버지는 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게 혹은 아끼는 나무 중 한그루를 하필이면 라파엘이 잘라서 화가 났을 것이다. 소리를 지르며 다가와서 라파엘의 뒷 머리채를 휘어잡아 당기고는 그래도 화가 안 풀려서 뒤통수를 후려쳤다고 한다. 매맞는 것이 낯선 아들, 게다가 이제 중학생이 되는 12살 아이에게 그런 할아버지의 행동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이 있는 순간, 라파엘 아빠는 없고, 무엇보다 라파엘이 프랑스로 간 것은 한국에서 학교생활에 어려움이 있어서 마침 코로나도 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서 바캉스처럼 잘 쉬고 마음 잘 추스르고 오라는 엄마아빠의 결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라파엘 아빠의 그 어두운 어린시절의 회상을 아들 라파엘이 고스란히 겪었다 생각하니 마음이 무너져내린다. 당장,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해서 뭐라고 하고싶지만 참았다, 라파엘과의 약속도 있었고, 무엇보다 곧 프랑스에서 지역간 격리해제가 되는 5월 11일에 바로 아빠랑 아빠집으로 가기로 했단다. 그때까지만이라도 아이에게 평화를 줘야하기 때문에 꾹 눌러참는다.
나에게 만일 라파엘이 없었더라면 나는 안타깝게도 덜익은 인간으로 내 인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되어보고, 내가 아픈거 보다 자식이 아프면 가슴이 미어질 듯이 아픈게 세상에서 가장 슬픈 슬픔이었다. 물론 이 슬픔의 깊이는 아들이 자라며 점점 더 커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마는 이겨내야만 한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참아야 하고 견뎌야 하고, 당장 수화기를 들고 전화하거나 쫒아가 아들을 데려 올 수도 있지만, 더 크고 넓게 아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이 순간을 이겨내야만 아들이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견뎌야 한다. 자식이 없어도 세상을 보는 혜안이 넓은 분들은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어렴풋이 스스로 터득하고 깨우치며 사는 분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 그 분들의 슬픔은 또 다른 슬픔일 것이다. 인간은 무조건 행복한 사람들은 정말로 단 한사람도 없다. 요즘 드는 생각은 아무리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어도 각자의 이기심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들 가운데 기본은 되는 사람들과 어우러져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내 취향에 딱 맞는 사람들은 ‘나’지 ‘너’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엄마에게 대들며 ‘왜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했냐고.’ 반항을 한 적이 있었다. 나에게 아들이 있으니 아들이 겪는 이 고통의 순간을 대견하게도 잘 이겨내는 것에 감사하고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 외롭다고 괜히 아들을 낳아 고생시키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온갖 모든 상념들로 머릿속이 복잡한 하루를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