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사건이 있던 건 아니지만, 그냥 갑자기 눈물이 흐르던 날. 세상이 나만 빼고 다 행복해 보이던 날. 그런 날 있잖아. 30살의 어느 날이었다. 누군가에겐 아직 어리고 앞길이 창창한 청년이라지만 사회적 통념 속에서 마냥 어리다고만 할 순 없는 그런 나이. 그렇지만 하고 싶은 것이 많은 로망으로 가득 찬, 20대가 아닌 30대가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 30살. 치열하게 살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이룬 게 하나도 없고 가진 게 하나도 없는. 문득 주변을 바라봤는데 나 자신이 초라해 보였고 온 세계의 불행을 내가 껴안은 듯했다.
무엇 때문이라고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이 방울방울 솟아올랐다. 방울들은 그냥 톡톡 터지는 게 아니라 펑펑 큰 소리를 내며 내 위로 떨어졌다. 그 방울들의 잔해는 나를 감싸듯 안으로 들어와 소용돌이쳤다. 슬프거나 화가 난다는 표현보다는 '서럽다'라는 표현이 적절할 듯 한 그런 감정이었다. 내 머리 위로 차곡차곡 쌓여가는 무거운 책임들은 내려놓고 싶다고 마음대로 내려놓을 수도 없었고, 세상에서 그냥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삶을 포기하고 싶단 생각과는 다른, 그냥 내가 없어지고 싶다는 모호한 감정. 이런 감정이 들 때면 뭘 해도 해결이 되질 않아서, 도피여행을 떠났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내가 없어질 수 있다는 묘한 쾌감 때문일까.
아는 사람도 하나 없고, 모르는 단어들이 들리는 그곳에서 더 큰 안정감을 느꼈고, 더 용감해질 수 있었고, 더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낄 수가 있었다. 미리 치밀하게 준비하지도 않고 거창한 계획도 세우지 않고 그냥 갑자기 떠난 여행들이 다시 일상에 돌아왔을 때 산소호흡기 같은 역할을 해줘서 그나마 숨을 쉬는 것 같다. 고산지대에 올라와 있는 듯 숨이 막히는 순간들이 참 많다. 소용돌이치는 감정들과 생각들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는 글렀지만, 그래도 '그런 날'을 하루 넘긴 나에게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