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신생아의 탄생

자존감 새끼 키우기

by 소소


처음부터 자존감이 낮았던 것은 아니었다. 특별히 잘난 것도, 그런 사람도 없고 비교랄 게 없었던 시골에서는 오히려 불행이라는 부정적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촌구석에 박혀 살던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도시로 나와보니 그곳은 전쟁터였고 겉은 웃고 있지만 속은 악마인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것 같았다.


도시로 전학을 간 첫날이었다. 같은 반 친구들이 처음 만난 친구에게 하던


“너는 어디 살아?”

“용돈은 얼마 받아?”


라는 질문은 선 긋기였고, 어떤 곳에 살고 있고 용돈을 얼마를 받고 얼마나 부자인지에 따라 은근히 나뉘는 계급 같은 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질문의 대한 대답과 자기소개는 서열이 되었다.


이때부터였을까 내 마음속에서도 비교라는 게 시작됐고, 그렇게 나는 자존감 신생아로 태어났다. 신생아는 혼자서 서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며 이유 없이 울곤 한다. 나도 그랬다. 지금에서야 그때 왜 그랬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정확한 이유도 알지 못한 채로 여러 가지 생각들과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며 잠식되었고, 겉으로는 내색하지 못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 폭발하듯 터져 나오고 있었다.


학교에 가는 게, 친구들을 만나는 게 즐거웠던 시골 아이는 사라졌고 이제는 학교 가는 것이 무섭고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학교는 더 이상 어린아이의 놀이터가 아니었다.


내가 나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비교로 나의 가치가 정해지기 시작하니 ‘나는 부자도 아니고 용돈도 많지 않은데, 그럼 내가 부족한 사람인 걸까? 이런 내 모습은 창피한 걸까?’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들었고 위축되었다. 마음이 그러니 자세도 점점 쪼그라들었다. 당당하게 가슴과 어깨를 펴고 다니질 못했다.


2005년 3월, 도시 생활이 시작되던 봄. 순수했던 시절의 세계 반대편에 발을 디딘 후 눈을 감아야만 보이는 괴롭힘의 세계를 처음으로 목격했고 “내가 저 옆에 서 있지 않아서 다행이야.”라고 말하며 누군가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것이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같은 반에 한 친구가 유독 내 눈에 들어왔다. 그 친구는 항상 안색이 어두웠고, 웃는 모습을 거의 보질 못했다. 그 애의 이름은 A. 그리고 그 옆엔 늘, 소위 말해 반에서 가장 ‘잘 나간다’라는 B가 붙어있었다. B는 스스로도 부자라고 말하고 다녔고, 친구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과시하곤 했다.


A는 언제나 B가 시킨 심부름을 전부 해야 했고 그의 옆이 아닌 뒤를 따라다녔다. 이 관계를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이건 친구 사이가 아니었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가려놓은 상하관계였으며 B는 A를 소유하고 있었던 거다. 그는 A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었고 자신에게 잘 보이지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친구를 괴롭혔다.


나는 처음엔 잘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 사이를 끼어들지 않았다. 나도 혹여나 B의 눈 밖에 나서 내가 그렇게 될까 봐, 그 자리가 내 자리가 될까 봐 무서웠다.


나는 회피했다. 잘못됐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비겁하다는 걸 알면서도 고개를 돌렸다. 이 사건은 나를 참 많이도 괴롭혔다. 불쌍한 친구를 도와주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과 최선을 다해 모른척하며 도망치는 비겁한 내 모습. 갑자기 왜 이곳으로 전학을 왔고 이사를 왔는지 부모님에 대한 원망.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지 나는 왜 불행한 걸까 그러다가 나는 도대체 왜 이러지라며 자책으로까지 이어졌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빨리 이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드물게도 A가 혼자 떨어져 있는 순간을 발견했다. 움직이려 해도 움직여지지 않던 발이 이 순간 이상하게도 움직였다. 작은 용기를 내서 친구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너 B랑 친해?”

“응.”

A는 조용히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B가 맨날 짐 들으라고 시키는데 괜찮아?”

라고 두 번째로 물었다.

그 말엔 대답도 없었고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그 두 가지 질문으로는 상황이 나아지지도 바뀌는 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답답했던 속이 조금은 편안해지는 듯했다. 며칠 뒤, A는 나에게 다가와 학교가 끝난 뒤 자기 집에 놀러 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고 나는 좋다고 말했다. 친구는 학교에서와는 다르게 조금은 수다스러웠고 잘 웃었고 기분도 좋아 보였다. 내가 몰랐던 친구의 모습이었다.


이 친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떠나기 전 나에게 메일 주소를 물었다. 친구가 떠난 후 받은 메일 속 짧은 문장 하나.


“그때 말 걸어줘서 고마웠어.”


이 한 줄은 아직까지도 나를 울컥하게 한다. 크게 바뀐 건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친구는 그날 웃었고, 나는 무력했던 나 자신을 조금은 이겨냈다. 지금의 나는, 우리는 어둡고 우울한 순간들을 보내고 있을지라도 스스로 일어서고 걷기 위해서, 마음의 힘을 키우기 위해 질문을 해야 한다. “지금 어떻냐고, 괜찮냐고.”


친구가 떠난 후, 그 일련의 사건은 마치 나에게 켜진 경고등처럼 같았다. A의 자리가 언제든 나의 자리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사람들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약해 보이지 않으려 부단히 도 애를 썼다. 겁먹은 티가 나지 않도록. 들키지 않도록.


새로운 학년 새로운 반이 되었다. 나는 부모님이 어떤 일을 하시는지, 어디에 사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감정이 어떤지까지도 전부 감추고 숨기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곳에서는 솔직하거나 정직하게 드러낸 것들이 약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기에.


‘사회적 낙인’처럼 내 이마에 계급이 찍혀버리니까.

‘좋거나 즐거울 때 웃으면 지는 거다. 슬플 때 울면 패배한 거다.’


감정을 드러내는 건 약점을 잡히는 거라고 뇌를 가스라이팅했다. 그러다 보니, 잘못된 것이 아닌데도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고 늘 불안했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정류에 앉아 있을 때, 엄마 차를 타고 집으로 가던 친구가 멈춰서 창문을 내리고 말했다.


“엄마가 너도 집에 데려다준 대!”

그리고는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나는 깜짝 놀라 머뭇거리다

“나도 엄마가 태우러 오기로 했어.”

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 순간, 이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수군거림이 되고, 결국 따돌림으로 이어질까 봐 노심초사했던 것이다. 숨기고 회피하고 거짓말을 하며 나를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웃지 않는 날이 늘어났고, 말수도 점점 줄어갔다.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게 되었고, 속으로는 그렇지도 않으면서 착한 척, 괜찮은 척을 했다.


어두운 곳과 구석을 찾기 시작했고 잠이 늘었다. 어둡고 조용한 구석에 있으면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투명인간이 된다면 이 불안감에서 자유로울까. 그곳에서만큼은 묘한 안정감이 느껴져서 집착하듯 어둠을 쫓았다. 잠을 잘 때만큼은 머릿속이 어지럽지도 않았고 편안했기에 억지로 자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