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새끼 키우기
중학생이 된 나는 '화장'이라는 걸 접하게 되었다. 비비크림과 틴트를 열심히 바르며, 이게 없던 시절에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로 화장에 의존하게 되었고, 화장을 하지 않으면 밖에 나가지도 못할 정도가 되었다. 당시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화장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는 블로그였다. 블로그로 열심히 화장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외모에 조금은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건강하지 못한 마음과 낮은 자존감은 그 자신감을 집착으로 바꾸었다.
민낯으로는 거울도 보기 싫어 흐린 눈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예쁘고 말랐는데 나만 못생기고 뚱뚱하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당시 나는 167cm에 47kg로 굉장히 마른 상태였는데도 거울을 보면서 뚱뚱하다는 생각이 들어 매일매일 다이어트를 했다. 거울을 보면서 피부가 안 좋다는 생각에 비비크림을 덕지덕지 바르다 보니 오히려 피부는 더 나빠졌고, 그걸 가리기 위해 화장은 점점 두꺼워졌다. 내 모습을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하니 얼굴 하나하나가 다 마음에 들지 않고 못생겨서 싫어지기까지 했다.
‘왜 나는 이런 얼굴로 태어났을까?
연예인들은 다 예쁜데? 왜 나는 못생겼지?’
라는 생각이 일상이 되었다. 화장과 다이어트만으로 외모에 만족이 안되니 성형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TV 프로그램과 인터넷, 블로그에 있는 성형에 대한 정보들 그리고 성형에 관한 책까지 보면서 전신성형을 해서 예쁜 사람이 되고 싶다며 연예인처럼 예쁜 외모가 되는 상상도 자주 하곤 했다. (이 정도 정성으로 공부를 했으면 성형외과 의사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자존감이 낮다 보니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칭찬도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누군가 외모를 칭찬하면
“감사합니다.”
가 아니라 속으로
‘저 인간은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거지? 뭔가 필요한 게 있는 건가?’
하고 의심했다.
물론 티는 내지 않았지만. 칭찬은 무언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만 느껴졌다. 항상 극구부인하기 바빴고 그러다 보니 칭찬과는 더욱 멀어지는 인간이 되어갔다.
지금의 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놀랄 일 중 하나가 바로 이 ‘칭찬에 대한 태도‘와 ’ 사진‘이다. 현재 나는 누군가 칭찬을 하면 감사한 마음으로 받고 표현하며 한 술 더 떠서 나 스스로에게 칭찬을 보탠다. 그때는 없던 여유가 더해져 나를 칭찬해 준 상대방까지 칭찬하며 넘어간다. 내가 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니 상대방이 나를 보는 시선들도 그럴 거라 단정 짓게 되었고 외모에 만족하지 못하니 사진 찍는 것도 극도로 피하며 싫어했고 경기를 일으키는 수준이었다.
내가 중학생 때는 싸이월드가 유행이어서 셀카를 많이 찍고 친구들과도 사진을 찍어 올리곤 했는데 나는 절대 사진을 찍히지 않으려고 엄청난 노력을 했다. 못생긴 내 모습을 사진으로 한 번 더 인지하고 싶지도 않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달까. 지금은 사 진무새가 되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싶으면서도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때의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바꿀 수는 없었겠다 싶다. 돌아오지 않을 시간들을 오롯이 느끼고 즐기기에도 부족한데, 참 많이도 힘들어하고 고통받으며 자책하고 미워했다.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고, 너무 불행한 나 자신이, 상황이, 환경들이 다 싫어서 벗어나고 싶은데 방법이 없으니 ‘죽어야 할까?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죽을 용기도 없을 정도로 나약한 나라서 다행이었을까. 그런대로 또 살았고 살아졌다. 무기력 속에서 무력함에 취한 듯 하루를 버티며 지냈다. 자존감이 낮은 이유는 어쩌면 내가 나에 대해서 내 감정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눈치 보느라 바빠서 내가 지금 기쁜지 슬픈지 힘든지 돌아볼 여력이 없는 거다.
하루에도 여러 번 거울을 보며 얼굴에 뭐가 묻진 않았는지 화장이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사진 찍기 전 표정은 어떤지 확인할 때처럼 마음이 아프진 않은지 상처가 나진 않았는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봐야 한다. 조용하면 꼭 사고를 치는 아이처럼 아직 어린 내 마음도 자주 들여다봐야 사고가 나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