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1.

by eunice 유니스

파리에서... #1.


강한 사람이 아닌데

모진 현실 속에서 단단한 어른으로 살아가려

나의 마음을, 나의 감정을, 나의 욕구를 억누르며 살아왔더니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기적과도 같이 ‘파리’(Paris)가 나에게 왔다.


나는 원래 충동적인 사람이 아닌데

‘가고 싶다’는 단순한 욕구에

파리행 티켓을 덜컥 구매해버렸다.


원래 여행을 다닐 때에는 시간단위로 계획을 짜는 나인데

파리에서는 그러고 싶지 않아서

비행기 왕복 티켓과 숙소만 결정하고는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다.


여행이 주는 선물 중 하나는 ‘자유’이다.

일상 속에서 나는

나를 수식하는 여러 형용사와 명사들에 규정지어진다.

그 역할들에 맞게 여러 페르소나를 가지고 살아간다.


나를 아무도 모르는 외딴 곳에 여행을 가면

나는 마치 신이 나를 처음 빚으셨던

벌거숭이의 내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것만 같은

벌거숭이의 모습이지만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자유롭다.


자유로운 영혼들이 사랑하는 프랑스는

자유를 갈망하던 나에게

운명과 같았다.


여느 빠리지앵처럼

노천카페에서 느긋하게 카페 알롱제를 마시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그림을 그리고,

공원벤치에 앉아 바게트를 먹고,

영혼을 깨우는 노트르담 성당의 종소리에 취해도보고,

책에서만 보던 유명화가의 작품들을 눈에 새겨 넣으려

하루 종일 미술관을 서성이기도 하고,

값싸고 맛있는 와인 한잔에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짧은 여행을 아쉬운 마음으로 마무리하며

벗어놓았던 옷들을 다시 한 겹, 두 겹 껴입었다.


그러나 파리에 오기 전보다 훨씬 가볍게 입었다.

나를 무겁게 누르던 여러 겹의 옷들을

그 날 나는 파리에 두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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