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언어화
언어는 참 신기하다.
내 안의 수많은 감정들은
언어로 정리되어야만
통제가 되기 때문이다.
때로는
내 안에 이유 없이 끓어오르는 마그마를 품고 있을 때가 있다.
때로는
내 안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차디찬 바람이 불 때가 있다.
이유를 알기 힘든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일어날 때에는
잠시 침묵한다.
거센 폭풍우가 가라앉을 때까지...
조급만 마음에
입을 열면
토네이도급 강풍에 뽑혀진 나무와 떨어져 나간 지붕이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세상이 끝날 것처럼 휘몰아지던 폭풍우도
검은 밤이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지고,
먹구름이 지나간 자리엔 다시 태양이 뜬다.
다시 맑은 하늘이 돌아오면
뜯어져나간 집을 수리하기 이전에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
토네이도가 왜 생긴 것인지,
쓰나미가 무엇 때문에 생긴 것인지
그 이유와 진원지를 밝혀내는 일이다.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인 것인지,
불의 고리에서 발생하는 지각판의 충돌 때문인 것인지...
기후변화에 분명한 이유가 있듯이
내 감정변화에도 분명한 이유와 원인이 있다.
나의 감정에 대해서
정리하여 언어로 표현될 때야 비로소
그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감정의 언어표현 훈련이
잘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감정에 지배를 받기 쉽다.
라캉도 언어가 포기되는 지점에서
폭력이 시작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때로는 진실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때로는 감정의 정체를 파악하여 언어화하는 작업이 귀찮아서
대충 얼렁뚱땅 넘어가다보면
필히 언젠가는 폭력적으로 다시 돌아온다.
나 또한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던 감정들 때문에
몸이 아팠던 경험들이 꽤 많이 있다.
언어로 정리되고 표현되지 못하는 감정들은
자신을 아프게 하거나
남을 아프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