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by eunice 유니스

침묵


심리학자 카를 융은 우리의 무의식에 잘못, 취약함, 불안정, 공격성, 증오, 성적 충동 등을 담고 있는 ‘그림자’가 있다고 본다. 융에 따르면 이 그림자는 의식 영역 밖으로 밀려나 있긴 하지만 우리의 행위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친다. 자기 자신도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는 절대 인정할 수 없는 잘못을 남에 대해서는 (마치 자신은 흠 없는 사람이라는 듯) 준엄하고 가차 없이 비난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자신 안에 있는 결점과 잘못을 외부로 돌리는 것을 심리적인 ‘쓰레기 내버리기’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남을 깍아내림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올리려는 시도다. 그렇게 자신의 부담을 밖으로 퍼부어버리고 나면 적어도 한동안은 좀 더 편하게 느낄 수 있다.

융에 따르면 이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다.

‘비난의 역설’ 중에서…



나는 늘 내가 위선적이라고 느낀다.


내가 실생활에서 느끼는

부당함과 억울함과 불만과 두려움에 대해선 침묵하면서,


내 생활영역 밖의 집단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이단옆차기, 돌려차기와 내리찍기의 공격술을 펼치곤한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나의 무기는 ‘침묵’이다.


때로는 내가 당하는 부당함을 또박또박 말할 자신이 없어서,


가슴 속에 묻어둔 덩어리들을 입 밖으로 내어 드러내었을때

분명 그것을 조율할 동안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이 수반될 텐데

그 불편함이 싫어서,


때로는 문제화해도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고

관계만 나빠질 것이 뻔히 예상되기에...


언제나 나는 ‘침묵’이라는 도구를 사용한다.


참 비겁하고 겁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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