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비듬
퇴근길에 눈이 내린다.
자기 덩치만 한 가방을 메고
낄낄 거리며 웃으며 걸어가는
어린아이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온다.
“ 야~ 이거 하늘에 사는 거인들의 비듬이야! “
“ 키득키득... 하하하...”
“ 풋! ”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다행히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들키지 않았다.
그게 뭐 그리 재밌다고 하하호호 웃어대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무장해제되어 버렸다.
순간, 오랜만에 웃고 있는 내가 낯설기만 하다.
무기력과 우울함에 굳어진 얼굴 근육이
방심한 사이 터져 나온 미소에 무척이나 당황했나 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삶의 무게와 책임져야 할 식구들이 늘어갈수록
웃음끼 싹 빼고
매사 serious 하게 살아온 지난날들이었다.
그런 내 모습이...
얼굴도, 마음도 굳어져버린 내 모습이
싫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데
이제라도 웃어야지...
웃으며 살아가야지...
새하얀 눈송이가
거인의 비듬으로 보일 수 있도록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야지..
주문을 외우듯 되뇌이며
풀어야 할 숙제가 하나 더 더해진 무게만큼
무거워진 발걸음을 이끌고
퇴근행 지옥철에 몸을 맡긴다.
사진출처 : 영화 <러브스토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