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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방송작가 Sep 06. 2021

고생은 내가 아니라   개한테나 주세요

때론 초라하고 때론 예뻤던 나의 20대에게

프리랜서 방송 3년 차 작가였던 나는 일이 끊겨 쉬고 있을 때가 있었다. 때마침 발주받아 글을 써주는 업체 대표인 선배에게서 일거리를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사무실에서 만나 일을 하기로 하고, 작가료를 묻는 내게 선배는

"작가료는 없어. 네가 좋아하는 글을 쓸 수 있는데 돈을 따지냐, 기회 주는 걸 고맙게 생각해야지."

여기서 경력을 쌓아 다른 일을 하면 더 많은 작가료를 받을 수 있다며, 자신의 꿈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일하라고 했다.


나는 지방에서 올라와서 매달 생활비가 들기 때문에, 돈 안 받고 글을 쓸 수 없다고 하자, 선배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작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는 너보다 후배인데도, 새벽에 아파트 주차장에서 세차 아르바이트하고 나와서 여기서 글을 써. 그러면서 행복하다고 말해. 꿈을 위해서 고생할 줄도 알아야지. 어떻게 돈만 밝히냐. 너는 헝그리 정신이 부족해" 

이 일 하겠다는 사람이 수두룩하지만, 생각해서 나한테 기회를 준 거라며, 작가가 될 자세가 안 돼있다고 나한테 화를 냈다. 지금 하는 고생이 나중에 작가 일을 하는데 밑거름이 된다는 걸 왜 모르냐며, 고생을 밥 먹도록 해도 살아남을까 말까 한데, 그런 식으로 일해서는 방송작가로 살아남기 어렵다고 한참 동안 훈시를 했다.


"고생은 제가 아니라 개한테나 주세요. 선배는 돈 받으며 따온 일을 왜 나는 공짜로 해야 돼요." 외치고 싶었지만, 내 입에서는 나온 말은 "선배님 죄송합니다. 지방에서 올라와 생활비가 필요해서요. 좋은 기회를 주셨는데, 할 수 없을 거 같네요."였다.

좁은 방송 바닥에서, 건방진 후배로 찍혀 앞으로 일을 못 받을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다행히 얼마 후, 자리가 났고, 방송작가로 살아남기 어렵다는 선배의 말 때문인지 나는 참 열심히 일했다. 많은 시간이 흘러 나는 그때의 선배보다 더 나이를 먹었고, 작가로 밥 벌어먹고 살고 있다.


물론 일 하는 동안 선배의 말처럼, 나는 돈 안 받고 글을 써주기도 하고, 일주일에 3일씩 야근하기도 했다. 며칠 밤샘으로 버스 좌석에 앉으면 조느라 집 정류장에 내릴 수 없어, 손잡이를 잡고 서서 가면서도, 흐뭇해했던 기억도 있다. 좋아하는 일이라서 행복한 추억이 많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라면 NO! 나는 절대 안 돌아간다. 너무 불안하고 너무 힘들고, 너무 가진 것이 없었다.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혹 20대의 나를 만나게 되면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엄지발가락에 힘주고 버티고 서서, 견디느라 애썼어. 벤치가 없으면 땅이라도 좋으니 주저앉아 잠시라도 쉬어. 꽃을 보면서 너의 청춘이 초라하지 않음을, 얼마나 예쁜지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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