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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방송작가 Oct 01. 2021

여행가방처럼 하루가 찌그러져도 괜찮아

어떻게든 되겠지.

이탈리아의 한 회사는 찌그러진 여행가방을 만들었다. 여행길에 끌고 다니다 보면, 여행가방에 흠집이나 눌린 자국은 생기기 마련인데, 미리 찌그러트리고 우그러트려, 여행자들의 걱정을 줄여주기 위해서다. 멀리 설렘을 안고 떠났던 여행에서 새로 산 가방이 찌그러지거나 흠집이 날까 걱정하다가 제대로 구경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미 흠집이 나고 찌그러진 가방에 몇 개 더 흠집이 나도 크게 상관하지 않게 된다. 걱정거리가 사라진 여행자에게 남는 것은 여행을 재밌게 즐기는 자유뿐이다. 


언제 터질까 아슬아슬한 뾰루지를 미리 터트리는 것처럼, 찌그러진 가방은, 미리 걱정을 터트려버린다. 조심하는 게 아니라, 저질러버리는 유쾌한 반전이다. 'Handle without care. 마음대로 다루세요.' 이 찌그러진 여행가방의 슬로건이다. 상처 받을까 두려워, 찾아온 사랑 앞에서 망설이고, 실패할까 걱정하는 내게,  '당신이 살고 싶은 대로, 당신 인생을 마음대로 다루세요.' 말하는 것 같다. 처음 비를 맞는 것이 두렵지만, 비에 흠뻑 젖은 다음 빗속을 뚜벅뚜벅 걸어본 사람은 안다. 그 통쾌함을! 걱정하고 조심하느라,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이 뭔가를 잊었던 건 아닐까. 


여행의 목적은 가방을 예쁘게 지키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경험과 즐거움이다. 인생의 목적도 멋지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이다. 공장에서 금방 찍어낸 철판처럼 평평한 바다, 잘 다려서 주름 하나 없는 것 같은 호수는 아릅답지 않다. 바닷물이 찌그러진 파도, 강물이 찌그러진 물결이 있어야 바다도 호수도 아름답다. 우리는 살면서 아픈 상처를 입고 실수로 흠이 생기기도 했다. 오늘 하루가 내 인생이 찌그러져도, 이게 우리의 모습이고 이대로 충분히 아름답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찌그러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믿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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