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세상을 마음껏 누렸으면 좋겠다

전지적 아들 시점

by 집안의 불청객

그런 말이 있다. 부모가 열심히 닦아 놓은 길을 자식은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는 말.


그 말은 완전히 맞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다. 그저 중간 정도의 어정쩡한 문장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부모는 우리가 많은 것을 누렸으면 한다.


그리고 그 누리는 것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른다.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는 스펙을 쌓아야 한다.


결국, 스스로 노력해야 하는 점과 부모의 배경이 적당히 맞물려야 가능하다.


나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배경을 탓하지 않았었다. 나의 문제점을 알고 고치려 들었다.


문제는 고치려고 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마음껏 누리기에는 스스로 능력 부족이 컸다.


그래서 그 누리지 못한 것을 부모의 탓으로 돌렸다.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가슴속에 품었다.


품지 말아야 할 생각이었고 하지 말았어야 하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나의 힘듦을 그들에게 전가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고 변명하지 않겠다. 이유도 없었고 그저 원망하는 대상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가장 가까운 존재가 그들이었으니까.


가장 가깝기에 나를 제일 많이 지켜보았다. 그리고 내가 세상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제일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그 시선이 솔직히 말하자면, 부담스러웠다. 남들이 일상처럼 즐기는 것을 보며 질투와 시기를 느꼈고 그럴 때마다 난 더 우울해졌다.


늪에 빠졌기에 세상이 미웠고 당연히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부모님은 약값을 대주었고 이길 수 있다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들의 말은 무시한 채 폐쇄적인 벽을 세워 내 세상만을 만들었다.


그건 일종의 보호가 아닌 갇혀있는 새장과도 불과했다. 동시에 깃털이 잘린 새였다.


처음에는 날려고 노력했지만, 깃털이 잘린 걸 안 후 어차피 날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자유로워지기를 포기했다.


그것이 익숙해졌는지 날개가 자랐음에도 날지 않았다. 부모님은 나보고 자신감을 가지라고 했다.


이미 바닥나서 보이지 않았다. 자신감이라는 게 나한테 거대하게 다가오는 쓰나미와도 같았다.


지금도 그래서 계속해서 회피 중이다. 자신감이라는 단어를 듣기 싫다. 그 단어만 나오면 자리를 뜨고 싶다.


어머니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더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돈 걱정하지 않으며 글을 쓸 수 있는 삶을 생각해 본 적 있냐고 말이다.


그 말에 수긍하지 않는 답변을 말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듣자 내심 마음속으로는 그랬으면 좋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딴 생각이 든 나를 저주하고 미워하고 용납하지 못했다. 계속해서 내 문제가 아닌 타인으로 문제를 돌리는 모습이었으니까.


마음껏 세상을 누리지 못하게 만든 건 나였다. 남 탓을 했다가 자기혐오에 빠져버리고 세상을 보는 눈을 감았다.


인제 와서 찾아보려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판도라의 상자처럼 마지막에 남은 게 희망밖에 없다.


희망은 과연 긍정적일까 부정적일까. 사람을 일으켜 세워 세상을 보게 할까, 아니면 언제나 목이 마른 상태에서 존재하지도 않은 오아시스를 향해 사막 위를 걷는 걸까.


부모님의 응원이 나에게는 희망과도 같다.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면서 생각에 따라 여러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부모님은 내가 희망을 찾으면 어떤 세상을 맞이할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어쩌면, 부모님이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세상은 그저 아들의 성장이 아닐까 싶다.


그런 마음을 알아주지만, 성장하지 못하고 유지도 못한 채로 퇴보하고 있는 나이기에 부모님의 세상을 예측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 세상은,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물속에 잠겨 숨도 쉬지 못한 채로 압박받고 있는 걸까. 아니면 하늘에 떠 있는 구름처럼 어디든 갈 수 있다는 희망일까.


부모의 마음도 모른 채로 내 앞만 생각하며 계속해서 달리고만 있는 건 아닐까.


꾹꾹 눌러 담은 나의 마음속에 누릴 수 있는 세상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부모님의 마음처럼 말 그대로 나만의 세상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되고 싶다.


그 세상의 길을 따라 때로는 걸으며, 때로는 달리며, 때로는 쉬어가고 싶다. 지금이 쉬어가는 때라고 믿으며 잠시 내려놓으려고 한다.